[아이와 함께한 도보여행]<13> 해남, 길에서 만난 여행자, 화가 아저씨

김재희 칼럼니스트 승인 2017.11.23 09:07 의견 0

[한국정경신문=김재희 기자] # 여행을 무지 좋아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여행을 할 수 없었던 평범한 주부. 할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지만 아이들 때문에 여행을 계속하게 되었다. 7살부터 5학년까지 네 명의 아이와 함께 티격태격하며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서로 큰 소리로 다투고 짜증내고 길가에 주저 앉으며 못 간다고 하는 아이들을 얼르고 달래며 끝까지 걸어가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야기. 여행을 하며 행복이란 것을 알고 자유로움을 알고 바람과 산과 들을 알아갔다. 특히 사람에 대한 신뢰와 소중함을 느끼며 소통해가는 이야기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진을 향해 걸어가는 길

'여행에는 약간의 낯설음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게 된 건 첫 여행지였던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였다. 아름다운 경치와 신선한 바람에 기분 좋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지만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너무 익숙한 분위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우리는 해남 땅끝 마을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여행자를 만났다. 진짜 여행자를.

버스 터미널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또 가슴이 두근거려왔다. 막막함이 자리를 차지했다.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아이들과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보니 저 만치 앞에 키가 큰 남자가 배낭을 메고 걷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도보여행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저 아저씨 여행 전문가 같애요. 저 아저씨 뒤만 따라가면 길 잃어버리지는 않을 거 같애요."

하며 아들이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빨리 걷고 있었지만 어린 아이들 걸음이라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아저씨가 뒤돌아봤어요"

불량한 여행자의 복장으로 걷고 있는 남희

기석이가 흥분했다. 소리치며 반가운 목소리로 떠들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 그 사람도 우리를 향해 한 번씩 뒤돌아보았다. 웃으면서. 우리가 가까이 가고 인사를 나누었다. 아마도 천천히 걸으면서 우리를 기다려준 눈치다. 그때부터 동행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그는 우리가 차를 얻어 타기 위해 천천히 걷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그는 5개월째 여행 중이었다. 완도를 거쳐 배를 타고 제주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제주에서 완도를 거쳐 여기 땅끝 마을에서 걷고 있는데, 우리와는 반대 코스였다.

그의 배낭은 우리의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커다란 배낭이었다. 아주 크고 전문가다웠다. 그런데 아저씨의 등짐에는 배낭 말고도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 중에 커다란 스케치북이 눈에 띄었다. 어디서든 스케치북을 내려놓고 그림을 그리며 여행을 하고 있었다. 스케치북을 들고 혼자서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 새로움과 낯설음을 찾아 새로 시작한 땅끝 마을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왜 걷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도보 여행을 하면서 내내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었다.

통영에서 시작해 동해로 죽 올라가 강원도에서 다시 바닷길을 따라 내려왔다고 했다. 통영에서 시작해 5개월째 계속된 여행 동안 무얼 했을까? 왜 그렇게 긴 여행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는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시각 디자니너로 10여년을 직장 생활을 하다 그게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림으로 기록을 하면서 보내는 여행이었다. 한편으로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마음에 늘 다른 생각을 품고 살면서 스스로를 구속하는 일과 직장 생활. 그리고 아는 사람들을 떠나지 못하는 것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면서도 평생을 그대로 살아가는 게 대부분의 인생이지만, 마음이 시키는 것을 받아들이고 떠날 수 있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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