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도보여행]<3> 제주 조밤나무 아래서 만난 할아버지

김재희 기자 승인 2017.11.02 09:22 의견 0

[한국정경신문=김재희 칼럼니스트] 집을 나서 하루 밤을 보내고, 아침부터 걷기 시작했다. 제주도 도보여행이라 마음 먹고 떠나서인지 아이들도 걷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느니 걸어간다는 생각도 쉽게 한다. 첫 날. 걸어가던 길에 우리의 여행에서 첫 만남이 되었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제주도 노형에서 아라동까지 걸어가는 길에 동백 씨도 줍고 조밤나무 아래 잔뜩 떨어진 조밤도 주웠다. 조밤은 좁쌀처럼 작은 밤이란 뜻인가? 확실하게는 모르겠으나 그런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표준 이름도 구실잣밤이니, 작은 밤이란 뜻인데.

아이들과 쭈그려 앉아 조밤을 줍고 있으니 길가에 있는 집에서 할아버지가 뭐하느냐면서 다가왔다. 조밤을 줍는다고 했더니, 아직 조밤이 떨어질 때가 안되었을 거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다 땅에 떨어진 조밤을 보더니

“아휴~ 정말이네” 하며 같이 조밤을 주워 주었다. 

“이걸 볶아서 먹으면 맛있어. 근데 금방 먹어야지 식으면 맛이 없어. 딱딱해지거든” 하더니

“다 한식구여?” 한다.

우리 애들 넷이 있으니 궁금한 모양이다.

어느새 집에 들어갔던 할아버지가 손에 뭔가를 들고 나왔다. 하나씩 쥐어주고는 직접 만든 비누라고 했다. 그러더니

 “자. 여기 내 수염을 봐” 봤더니 할아버지 수염의 반쪽은 까맣고 반쪽은 하얬다. 할아버지가 또 모자를 벗으며

“여기봐, 여기. 머리도 이쪽은 검고 이쪽은 허였잖아. 내 손도 봐. 오른 쪽 손은 깨끗하고 왼 쪽 손은 주름이며 점이 많잖아.”

신기하기도 하구나. 생각하며 바라보는데. 할아버지가 설명을 이어간다. 몇 가지 재료들을 넣어서 직접 실험을 해보고 비누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씩 줄 테니까 집에 가서 써보라고 했다. 이런 비누도 다 있구나. 신기해하며 받았다. 아이들은 동물 모양으로 되어 있는 비누를 보물을 받아들 듯 챙겨 넣었다.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신기한 일인지, 황당한 일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수염이나 머리는 반쪽만 염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속은 것 같기도 하고, 진짜인데 의심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걸어가는데 길 옆에 콩, 칡, 이질풀, 무릇꽃, 동백나무, 소철 등이 많이 보였다. 반가운 친구들을 만난 것 같았다.

배가 출출하면 아이들은 아침에 이모가 구워준 고구마를 꺼내 먹으며 걷고, 걷다가 다리 아프면 남의 집 평상에도 앉아 쉬었다. 하루 내내 걸어서. 다리가 아플 텐데도

“여행은 정말 좋아요. 기분도 상쾌하고.” 하는 큰 아이 기석이의 말을 들을 때는 내 마음도 뿌듯해졌다.

여행을 하는 것을 나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스치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 떨어지는 빗방울의 촉감도 섬세하게 느끼던 그 시간들. 길에서 만났던 그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모두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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