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균의 참견] 은행 실적, 수치로 증명합시다

윤성균 기자 승인 2024.05.09 10:42 | 최종 수정 2024.05.10 17:01 의견 0
윤성균 금융증권부 기자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은행권의 1분기 어닝시즌이 어느정도 마무리됐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대규모 손실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따른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특히 인터넷전문은행 맏형인 카카오뱅크는 분기 기준 역대급을 실적을 달성했다. 지속적인 고객 유입과 트래픽 확대를 기반으로 수신과 여신, 수수료·플랫폼 수익 등 전 부문에서 고른 성장을 이뤄낸 결과다.

9일 카카오뱅크의 실적발표 자료에 따르면 1분기 기준 고객 수는 2356만명을 기록했다.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처음으로 1800만명을 넘어섰다.

카카오뱅크는 “고객 활동성 증대를 기반으로 고객의 일상 금융활동으로 침투하며 ‘더 자주 사용하는 은행’으로 자리잡았다”며 “고객 유입과 고객 활동성 강화의 맞물림은 수신 증가와 더불어 수수료·플랫폼 비즈니스 성장으로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발표된 실적만 놓고 보면 카카오뱅크는 이날 축포를 쐈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 실적 발표 이후 카카오뱅크의 주가는 떨어졌고 증권가는 목표가를 줄하향했다.

8일 진행된 카카오뱅크의 컨퍼런스콜에서도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매서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주로 카카오뱅크의 수익성 부진과 대출 성장률 저하 등의 문제를 짚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올 1분기 카카오뱅크의 순이자마진(NIM)은 2.18%로 전분기(2.36%) 대비 18bp 떨어졌다. 올 1분기 은행권을 통틀어 현재까지 최대 낙폭이다. NIM은 은행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다.

카카오뱅크가 향후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강회 기조를 감안해 여신 성장 목표치를 기존 20% 내외에서 10% 초반으로 낮춘 것도 목표가 하향의 빌미가 됐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여러 은행 종목들이 ‘밸류업 프로그램’ 바람을 타고 올랐지만 카카오뱅크는 여기서 소외됐다”며 “고금리 시기엔 성장주에 대한 할인율이 높게 유지되는 데다 대출 성장률 전망이 하향돼 차별적 투자 포인트가 약화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증권가의 이같은 지적은 은행 실적에서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카카오뱅크가 배포한 실적 자료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시중은행 대비 업력이 짧고 아직 사업 규모도 작은 인뱅들은 실적 발표 때도 당기순익이나 NIM, 자본비율 등 핵심 지표보다는 주로 고객수를 내세우기 쉽다. 케이뱅크와 토스뱅크도 올해 들어 차례로 가입자 1000만명을 달성하자 ‘1000만 고객’ 키워드로 홍보 경쟁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올해 IPO(기업공개)를 앞두고 있는 케이뱅크 뿐만 아니라 모회사인 비바리퍼블리카(토스)가 IPO를 추진 중인 토스뱅크도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고객수나 플랫폼 영향력 알리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리한 데이터는 강조하고 불리한 데이터는 감추는 등의 행보는 시중은행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적 발표 때 잘한 것을 강조하지 잘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물어 보지 않으면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모든 금융소비자들이 증권사 애널리스트나 경제지 기자들 처럼 은행들의 실적 발표 자료를 꼼꼼히 살펴볼 수 없다. 이런 수치들이 금융사를 선택하는 중요한 잣대가 돼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은행권에서는 실적 시즌만 되면 줄세우기식 순위 매기기가 지나치다는 볼멘 소리도 한다.

하지만 기업 실적 발표는 지난 분기의 실적을 돌아보고 앞으로 경영방향을 세워 고객과 투자자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한 목적이 크다.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금융사입니다”라고 치켜세울 것이 아니라 수치가 증명하도록 투명하게 공개하고 한 발 물러서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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