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도보여행]<2> 제주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리고

김재희 기자 승인 2017.10.31 09:27 의견 0

[한국정경신문=김재희 칼럼리스트] 무작정 떠나 제주에 도착했던 첫날. 동생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어두컴컴함 속에 무작정 걸어가면서도 설레던 순간들과 피곤하지만 행복한 표정의 아이들이 있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8시 20분. 비행기에서 내려 무작정 노형 쪽으로 걸었다. 가야 할 곳의 버스 노선도 모르고 정확한 위치도 몰랐다. 버스를 탈 수도 택시를 잡을 수도 없었다. 어차피 도보여행하기로 한 것이니 걸어가자고 마음먹었다. 아이들이 별 불만 없이 따라왔다. 가면서 동생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마저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핸드폰 밧데리도 다 떨어져 가고 아무도 연락이 안되면 어디로 가야 하나?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 아무 불평 없이 따라오던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 .

막연한 기억에 의존해 동생의 집을 향해 걸어가보는데 길거리는 이미 어둠이 깔렸다. 걷다 보니 깜깜함 속에서 느끼게 되는 무서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적하고 고요한 분위기에 젖어 드는 나를 발견했다. 어둠 속에서도 오래된 나무들과 조용한 거리, 그리고 몸을 스치는 시원한 밤공기가 느껴졌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계를 보니 10시 10분쯤. 비행기에서 내려 두 시간 정도 걸은 셈이다. 몇 킬로미터나 걸었을까?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 동생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동생은 아직도 퇴근 전이고, 가족은 다 어딜 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내 집 마냥 냉장고를 뒤졌다. 보이는 데로 아무거나 꺼냈는데 포도와 찐빵이 있었다. 밥도 떨어지고 마땅히 요기할 것도 없었다. 밥을 해주느냐고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던 애들이 안 먹는다고 했다.

배고픈 것도 잊어버리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 한쪽에서 막내 미나가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 뒤 네 아이 모두 잠에 곯아떨어졌다.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뛰고 걷고, 피곤했던 하루. 그럼에도 아이들의 곯아떨어진 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여행의 매력에 빠질 것 같은 예감에 사로 잡혔다. 이제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주욱 걸어서 통일전망대까지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실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귀뚜라미 소리가 여름 한낮의 매미소리보다 더 시끄러웠다. 20여년동안 듣지 못하고 살았던 소리. 귀뚜라미는 울었겠지만 귀에 담지 않고 살았던 시간들이 몸으로 느껴졌다. 시끄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반갑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도 막상 떠나려니 두려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것이.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고향인 제주도를 첫 여행지로 삼고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제주에서 시작되었다. 제주도가 고향이라고 해서 다 가보거나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친근하고 낯익은 풍경이 있어 낯설은 곳으로 떠나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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