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스테이지] 논란 딛고 선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 미화 피했지만..

이슬기 기자 승인 2018.09.05 15:14 의견 0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 공연 사진(자료=㈜메이커스 프로덕션, ㈜킹앤아이 컴퍼니)

[한국정경신문=이슬기 기자] 개막 전부터 여러모로 뜨거운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휴 잭맨의 영화 '위대한 쇼맨'의 뮤지컬 버전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 인종차별주의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논란도 함께했다. 하지만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은 논란을 미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서커스와 뮤지컬의 만남. 화려함 속 한 인간의 일대기에 집중해 관객을 만나고자 했다.

막을 올린 '바넘: 위대한 쇼맨'은 확실히 휴 잭맨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같은 인물을 소재로 했을 뿐. 스토리 전개와 넘버 모두 별개의 극인 것. 1980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기에 영화보다는 더 오래된 극이라 할 수 있다. 

바넘이라는 인물에 대한 논란은 어떨까. 사기꾼 바넘의 삶을 외면하지 않았다. 쇼 비즈니스 맨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거짓으로 만든 재미를 선사했던 사실을 무대에서도 만날 수 있다. 80세 노인 조이스 히스를 160세라 속이고 왜소증 청년 찰스를 세계에서 가장 작은 장군 톰 썸이라고 속인다. 무대 위 바넘은 "모든 쇼 비즈니스를 리스크를 감수하는 법"이라 말하는 철저한 사업가다.

바넘에게 쏟아지는 비판적인 시선은 찾을 수 없다. 바넘에게 쏟아지는 다양한 평가는 뒤로한 것이다. 실제 바넘은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여성과 장애인, 동물을 학대한 비윤리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조이스 히스는 실제 1000달러에 구매한 흑인 노예로 죽음 후에는 부검 쇼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대신 삶의 여러 사건들을 무대에 올린다. 바넘의 생애를 따라 걷고 그 안에서 공감과 평가를 마주하는 선택이다. 바넘의 파란만장한 삶의 흐름은 고스란히 극의 전개가 된다. 그러나 줄지어 등장하는 각각의 사건들은 캐릭터의 깊은 정서나 고뇌, 성찰까지 닿지 않는다. 공감과 설득력의 한계는 극의 흐름을 매끄럽지 않게 만든다.

하나의 극을 볼 때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가지각색의 색을 띄우더라도 결국 하나의 인생이기에 관객을 캐릭터에 몰입해 울고 웃으며 감동을 향해 달려 간다.  바넘의 선택을 이해하고 따라가기 위해서는 그 이유를 알고 느길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서커스의 활용도 아쉬움을 남긴다. 무대를 가득 채운 조명이 장관을 이루고 화려한 치장의 배우들은 관객의 시선을 빼앗지만 부족한 느낌을 주는 것. 서커스와 뮤지컬의 만남이라는 소개글에 큰 기대를 품을 탓도 있겠다. 곳곳에서 말그대로 바넘의 '위대한 쇼'가 무엇인지 찾을 수 있지만 극 전체 속에서 온전히 서커스가 갖는 매력은 미비하다.

물론 무대를 누비는 배우들의 열연에는 박수가 절로 터져 나온다. 주인공 바넘 역의 유준상은 또 한 번 자기 옷을 제대로 찾았다 싶을 정도로극를 쥐락펴락하며 종횡무진한다. 남우현도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극에 녹아든다. 정재은, 리사의 감칠맛 넘치는 연기와 감탄을 자아내는 노래도 반짝이며 빛난다.

'바넘: 위대한 쇼맨'은 진정한 즐거움에 대한 의문을 준다. 바넘의 쇼가 흥행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의 쇼를 보기 위해 줄을 이엇고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한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또 쉽게 잊을 수 있을 만큼 바넘은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다.

오는 10월 28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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