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정규직 전환의 허실] ③ 부당전직으로 사직종용까지 고용마저 흔들

이혜선 기자 승인 2019.07.12 07:46 | 최종 수정 2020.01.07 11:12 의견 0
이마트 고객들이 셀프 계산대를 이용하고 있다. (자료=이혜선 기자)

[한국정경신문=이혜선 기자] '무기계약직'은 고용만 안정된 비정규직을 말한다. 사측에서 '정규직'이라 주장하는 '무기계약직' 직원들은 고용에서마저 불안을 느끼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에서는 최근 셀프 계산대 도입을 놓고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이 일어났다. 협의나 완충지대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도입이 이뤄졌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마트 창동점에서는 무인 셀프 계산대 도입을 위해 리뉴얼 기간을 갖고 이 기간 동안 직원들을 타 지점으로 발령시켰다. 일부 매장에서는 일반 계산대를 닫아 고객들의 셀프 계산대 이용을 유도하기도 했다.

기자가 방문했던 한 이마트 매장에서는 1대의 일반 계산대와 6대의 셀프 계산대를 운영 중이었다. 셀프 계산대 옆에는 '셀프 계산대를 이용하시면 쉽고 간편하게 빠른 결제가 가능합니다'라고 적힌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뿐이 아니다. 셀프 계산대 옆에 놓인 조그만 스피커에서는 "안녕하세요 고객님! 카드 전용 셀프 계산대에서 쉽고 간편하게 결제하세요! 셀프 계산대는 카드 전용 계산대로 카드 사용 고객님께서는 셀프 계산대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라며 고객을 셀프 계산대로 유도하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규직' 전환으로 고용은 보장됐다고 철석같이 믿었지만 이들의 자리는 더 위태로워졌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공언한 게 있으니 회사 측이 정년 전에 직원을 일방적으로 해고할 수는 없고 그 대신에 '꼼수'를 쓴 것이다.

회사는 이들을 다른 부서나 아예 다른 점포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떠날 사람을 만들어냈다. 자연스럽게 '정규직' 직원은 또 줄었다.

지난 1일 자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 홈플러스에서는 매장 내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존 정규직 직원들이 이에 불만을 표한 것이다. 기존 정규직 직원들은 "정규직이 된다는 것은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라며 "타점 발령도 감수하라" 등의 엄포를 놓았다.

장기 근무자들도 정규직 전환에 별 반응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근무한 지 1~2년 된 신입들이야 이번 정규직 전환으로 장기 근무자들과 월급이 거의 동일해지는 등 혜택이 있었다.

이번 정규직 전환에서 장기 근무자들의 경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정규직 전환 대상 직원들은 모두 선임 직급으로 진급했다. 하지만 이들은 정년을 바라볼 나이이다. 결국 장기 근무자들 입장에서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사측이 의도적인 '노노갈등'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홈플러스에서만 10년 이상을 일했다는 A씨는 "예전에는 발령을 받아도 본인이 안간다고 버틸 수 있었는데 7월부터는 회사에서 강제로 이동시킬 수 있다"며 "발령 나면 가는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마트 노동자들이 발령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일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A씨는 "처음 발령받으면 엄청 긴장하게 된다"면서 "그렇게 많이 봐왔는데도 물건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어설프게 일을 못하면 위에서 어지간히 (내버려 두겠는가)"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던 지난 5일 홈플러스가 홍보했던 것과는 달리 정규직 전환 대상 비정규직 직원과 기존 정규직 직원의 직급을 구별하는 직급 체계를 도입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허상임을 회사 스스로 자인한 것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 직원들의 직급을 모두 '선임'으로 통일하는 대신 기존 정규직 직원들에게 '전임'이라는 새로운 직급을 만들어준 것이다.

"7월부터는 우리도 정규직 직원"이라고 당당히 말했던 홈플러스 비정규직 직원들의 희망은 회사 측의 '말장난'에 다시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비정규직 직원들은 결국 '비정규직' 꼬리표를 붙여 승진 시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니냐며 불만을 표했다.

지난달 말 롯데마트 덕진점이 폐점됐다. 관리자들은 진작에 폐점 소식을 알고 있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달 전에야 겨우 이 소식을 통보받았다. 직원들은 다른 점포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이 과정에서 절반 가까이 되는 직원들이 희망퇴직을 결정했다.

롯데마트는 수익성 개선을 이유로 올해에만 10여개의 점포 폐점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점포 폐점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마트나 홈플러스도 마찬가지이다. 무리한 점포 확장의 결과가 직원들의 고용 안정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매장에는 셀프 계산대 이용을 장려하는 문구(왼쪽)와 함께 이를 유도하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오른쪽). (자료=이혜선 기자) 
저작권자 <지식과 문화가 있는 뉴스> ⓒ한국정경신문 | 상업적 용도로 무단 전제,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