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정규직 전환의 허실] ② 10년째 임금·처우는 제자리

이혜선 기자 승인 2019.07.12 07:43 | 최종 수정 2020.01.07 11:11 의견 1
유통업계에 정규직 전환 바람이 불었지만 실제 노동자들의 삶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료=이혜선 기자)

[한국정경신문=이혜선 기자] '공룡 유통업체'로 불리는 마트 3사들은 저마다 '정규직 전환'을 홍보하는 데 여념이 없다. '정규직'으로 전환됐어도 마트 노동자의 임금과 처우는 10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구호만 요란할 뿐 전환된 직원들의 처우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현주소다.

이마트는 지난 2007년 캐셔 직군에서부터 정규직 전환을 시작했다. 이마트 비정규직들은 기대에 부풀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니 물거품이라는 게 확인돼 허탈함에 빠졌다. 마트 비정규 노동자들이 생각했던 정규직의 의미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12일 이마트에서 20년 이상 일했다는 A씨의 사례가 단적이다. 그는 지난 2007년 정규직 전환 소식에 얼마나 꿈에 부풀었었는지를 똑똑히 기억한다. 당시 회사는 캐셔들에게 정규직 전환을 이야기하며 생색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근무한 지 20년이 지나면 자녀들의 대학 학비를 지원해준다는 얘기도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A씨의 꿈은 깨져버렸다. 회사가 '정규직'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사실 고용만 보장된 '무기계약직'이었기 때문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근무한 지 20년이 지나도록 승진은 없었다. 임금도 기존처럼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A씨가 한달에 받는 기본급은 70~80만원에 불과하다. 월 급여도 130~150만원 수준이다.

사회 일각에서는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말하며 근로시간 단축을 주장하지만 이들에게는 그저 사치일 뿐이다. 워라벨을 따지며 일하다가는 그나마 받던 적은 급여마저 더 적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발표만 있었지 이들의 처우 개선은 없었던 셈이다. 즉 총액 인건비는 유지한 채 직원들을 자연스럽게 도태시키는 방식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포장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줄어드는 바람에 남아 있는 '정규직이 된' 직원들의 업무 부담은 그만큼 가중됐다.

홈플러스는 지난 1일 자로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홈플러스의 임금 수준이 다른 마트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노조 자체가 없던 홈플러스에 노조가 생기면서 임금을 비롯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부서간 시급 차별을 없애기 위해 시급제를 월급제로 바꾸고 비정규직 여성 사원들을 중심으로 처우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결국 회사와 노조의 요구가 맞물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이뤄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던 지난 5일 홈플러스가 홍보했던 것과는 달리 정규직 전환 대상 비정규직 직원과 기존 정규직 직원의 직급을 구별하는 직급 체계를 도입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 직원들의 직급을 모두 '선임'으로 통일하는 대신 기존 정규직 직원들에게 '전임'이라는 새로운 직급을 만들어준 것이다.

"7월부터는 우리도 정규직 직원"이라고 당당히 말했던 홈플러스 비정규직 직원들의 희망은 회사 측의 '말장난'에 다시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비정규직 직원들은 결국 '비정규직' 꼬리표를 붙여 승진 시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니냐며 불만을 표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기존 정규직 직원들의 역차별·불이익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 선임들의 명칭을 선임으로 변경한 것"이라며 "비정규직 전환자 중 장기 근무자의 임금이 정규직을 초과하는 등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기존 정규직의 임금도 올랐다"고 말했다.

그럴듯한 포장에 롯데마트 비정규직들은 경쟁업체 직원들을 부러워하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에 있다.

롯데마트에서 일하는 B씨는 정규직 전환 얘기라도 흘러나오는 다른 마트의 상황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그는 "홈플러스는 좋겠네요. 몇천명을 정규직화한다면서요? 롯데마트는 그런 것 없어요"라며 아쉬워했다.

B씨는 "마트 직원으로 들어올 때는 그냥 최저 시급을 받고 일하는 걸로 생각하면 된다"며 "사실 근무를 더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하청업체 직원들보다 페이가 더 적다"고 말했다.

롯데마트의 시급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올해 기준 주니어담당(무기계약직)의 임금은 기본시급 3500원, 직무시급 4850원, 리플레쉬 촉진비 150원으로 세분돼 있다.

복잡한 방식이 적용 이유는 성과급 산정 방식에 있다. 롯데마트의 성과급은 기본 시급의 70%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성과급을 덜 주기 위해 이런 이상한 방식으로 임금을 세분화하는 것이다. 덕분에 최저임금이 올라도 성과급은 수년째 45만원이다. 기본 시급이 수년째 동결이다.

롯데마트 캐셔의 경우 시제 준비, 마감 정산 시간 등 포스 외 근무시간은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회사에 이를 수차례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급여를 받지 않고 근무하는 시간만 해도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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