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대기업, 여성 등기임원 사실상 '제로'..CJ제일제당·오리온·해태 등 시대 역행

박수진 기자 승인 2020.06.22 15:44 | 최종 수정 2020.06.23 08:24 의견 1
올해 1분기 기준 13개 식품업계 남녀 등기·미등기 임원 수. (자료=전자공시)

[한국정경신문=박수진 기자] 국내 식품업계에서 여전히 '여성 임원'을 찾아 보기 어렵다. 특히 굵직한 주요 식품업체들의 여성 임원 비율은 10% 이하로 극히 저조한 게 현실. 등기임원만 살펴보면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수준이다. 시대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최근 정부나 공공기관은 물론, 전자·금융 등 업종을 불문하고 여성 고위직 양성에 힘을 쏟고 있지만 식품업계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 여성 임원 많아야 1~2명..‘구색 맞추기’ '들러리' 지적도 많아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제출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오리온·롯데푸드·농심·삼양식품·CJ제일제당·빙그레·동원F&B·오뚜기·해테제과·하이트진로 등 10개 기업의 등기임원 중 여성 임원 수는 ‘0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롯데칠성음료(여 1명·남 9명), 매일유업 (2명·4명), 남양유업 (1명·6명)의 경우 여성 임원 수는 1~2명에 그쳤다. 

이들 기업의 경우 미등기 임원에서도 여성 임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리온(1명·16명), 롯데푸드(1명·15명), 농심(1명·32명), 삼양식품(1명·7명), 오뚜기(1명·8명), 롯데칠성음료(2명·34명), 하이트진로(1명·33명), 남양유업(1명·3명)은 여성 임원 수가 많아야 2명으로 대부분 1명이다. 전형적으로 구색 맞추기 수준이다. 

이 중 오리온의 경우 여성 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1명은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이지만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배우자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오리온에서 여성 임원은 없는 셈이다. 등기·미등기임원 모두 여성 임원이 0명인 곳은 오리온뿐만 아니라 빙그레·동원F&B·해태제과 역시 전체 54명 중 여성 임원은 없다.

다만 CJ제일제당의 경우 미등기임원 81명 중 17명이 여성으로 눈길을 끈다. 하지만 여전히 등기임원 7명 가운데 여성 임원은 단 1명도 이름을 올리지 않아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등기임원과 미등기임원의 차이는 일반적으로 경영상의 책임 소재에서 갈린다. 상법상 등기임원이란 회사의 법인등기를 할 때 대표이사, 상무이사, 전무이사 등으로 등록되는 임원을 말한다. 즉 경영상 법적 책임을 진다. 반면 미등기임원은 회사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이사회 등 회사의 결정에 있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 남여 직원 평균 급여, 최대 40% 격차 "차별 심하다" 자괴감마저

이처럼 낮은 여성 임원 비율로 인해 전체 남녀 직원 평균 급여액에서도 최대 40%가량 격차가 벌어진다. 

지난해 농심의 직원 1인당 평균 급여액은 4921만원이다. 식품제조 부문에서 근무한 남직원은 평균 6576만원의 연봉을 받은 반면 여직원은 3714만원을 받았다. 남성 직원의 평균 급여액이 여성 직원보다 43% 더 많았다. 같은 기간 오리온 역시 직원 1인당 평균 급여액이 남성 직원 7300만원, 여성 직원 4266만원으로 남성 직원이 여성 직원 보다 40% 더 많은 급여를 받았다. 

롯데칠성(39.8%), 해태제과(35.1%), 동원F&B(34.7%), 오뚜기(32.6%) 역시 남성 직원의 급여가 여성 직원보다 평균 35.5% 더 높았다. 이밖에 CJ제일제당(10%), 삼양식품(12%), 빙그레(21%)도 10% 안팎의 남녀 평균 급여 차를 보였다. 

문제는 식품업계가 여성 임원 비율을 늘리기 위해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보수 조직 문화로 꼽히는 금융권이 2년 안에 여성 임원 비율을 점차 늘리겠다고 적극 나선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대조적이다. 성비 불균형 해소를 위해 식품업계가 적극 나서지 않는 한 이 같은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금융경영연구소 현은주 연구위원은 “최고 관리직에 도달할 때까지 노동시장에서 머무는 여성 근로자의 수가 적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충분한 성과와 자질이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이 저평가됐을 가능성 역시 있다”고 설명했다.

현 연구원은 “유리천장을 깨고 중간관리자로 이동하지만 최고 위치까지 도달하는 데 다시 한번 유리천장이 나타났다”며 “이는 직급의 단계별로 승진이동 가능성이 다르다면 단계별 유리천장을 형성하는 요인들을 분석해 이를 반영한 개별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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