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삼 전 포천부시장, "2년 간 참 많이 배우고 떠난다“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가 오지 않는다"

김태헌 기자 승인 2021.01.06 13:57 | 최종 수정 2021.01.06 13:58 의견 0
이계삼 전 포천 부시장.(자료=포천시청)


이계삼 전 포천 부시장은 지난해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올해 1일부터 경기도청 철도물류항만 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9년 1월 1일자로 포천시 부시장직에 임명됐으니 만 2년을 가득 채우고 떠난 것이다.

이 전 부시장은 2019년말 경기도청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지만, 백운계곡 등 산적한 현안을 두고 이동을 미뤘을 만큼 포천과 시민들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는 한양대학교에서 공부하고 1994년 제30회 기술고시를 합격해 95년부터 공직에 입문해 도시계획과 도시개발 분야의 경험이 풍부한 실력파다. 특히 경기도 광교개발사업 팀장, 과장, 본부장으로 7년간 일하며 탁월한 리더십과 능력을 펼쳤다. 지금의 수원 광교는 대한민국 제1의 명품 신도시가 됐고, 이는 이 전 부시장의 작품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경기도청 신도시개발과장, 도시정책과장, 융복합도시정책과장, 의왕시 부시장, 건설본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토목공학, 도시계획학, 정책학 등 3개의 석사학위를 받는 등 해박한 지식을 갖췄다는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런 이 전 부시장도 포천에서 만큼은 '큰꿈'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백운계곡정비 등 급박한 현안 사업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 부시장은 여느 부시장들처럼 임기를 채우기 위해 포천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광교'를 만든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포천도 그렇게 변화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고 그 벽 중 가장 높은 벽을 그는 '하던대로'라고 표현했다.

포천은 새로운 인물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지 못했다. 이 부시장은 "포천의 발전은 새로은 것과 외부세력에 대한 넓은 포용력이 바탕이 됐을 때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애둘러 포천의 사회문화를 꼬집었다.

수원에 위치한 경기도청으로 임명장을 받으러 떠나는 이계삼 전 부시장과 전화를 통해 포천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그리고 조언에 대해 들어봤다. 이번 인터뷰는 2020년 마지막날인 12월 31일, 수원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이뤄졌다.

△ 포천에서 2년을 계셨다.

-저는 수원에서만 공직생활을 했다. 부이사관 승진하고도 다 수원 쪽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너는 왜 '꽃길'만 가느냐, 그런 이야기도 있고 제가 북한에 대한 관심도 커 힘든 곳도 한번 가보자 하고 포천에 겁없이 지원했다.

실제 와보니 포천이라는 곳은 생각보다 힘든 곳이었다. 특히 나보다 주변 사람이 더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저까지 더 힘들어 졌다. 일이 생각처럼 잘 안됐고, 경기도나 중앙정부 등과 연결도 어려웠다. 포천에 대한 짝사랑을 중앙쪽에서는 비웃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사격장 문제 등 다른 지역에서는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포천은 당하고 있었다. 새로운 일들을 하기보다 현안 문제 해결에 허덕이다 보니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이런 여러 일들은 포천의 탓은 아니다. 국가가 포천에 더 배려를 했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중앙의 배려가 너무 약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중앙정부는 '조금'이라는 말로는 안될만큼 포천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어떤 사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아무래도 백운계곡 사업이 가장 마음에 있다. 이번 사업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한 단면을 보여 준 것이다. 상인들은 세상에 쫒기며 한 구석에서 어렵게 장사를 했었다. 그런데 또 시대는 변해서 더 이상 불법을 방치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분들이 물러나야 했고 사회적 피해자의 성격이 있었다.

불법에 대한 엄단과 인간적 측면에서 고심이 컸다. 빚을 지고 시작하신 분들도 있는데 그것을 하루 아침에 다 들어내면 형제자매들에게 빌린 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 드셨을 거다.

그래서 그 분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저는 물론, 공무원, 상인들 모두가 같이 길을 찾아보자고 매달렸다. 그런데도 2019년 말까지 철거를 못했었다. 사실 2020년 초에 도청으로 이동을 고민했다. 그런데 상인분들이 '너 이 와중에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셔서 남기로 마음 먹었다.

존경하는 선배님이나 은사님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래 이곳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라고 생각했다.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다고 판단하고 떠나면서도 아쉬움이 크다. 도청 관련부서로 옮겨가기를 원했는데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 백운계곡 사업, 어느 정도 자리 잡지 않았나.

-이재명 지사님과 경기도에서 강한 리더십과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셨기에 사업이 가능했다. 정말 수 많은 의사들이 붙어서 환자 하나 살리는 마음으로 움직였다. 우리 포천시 직원들도 너무 고생했고, 상인들도 정말 고생했다. 다행히 환자의 생명은 살렸지만 앞으로도 환자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일도 중요하다.

우리 공무원들과 상인들이 힘을 더하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공무원들 열정이 있다. 거기에 이재명 도지사님과 박윤국 시장님의 관심도 크다. 정말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으로 본다.

백운계곡은 격이 높은 곳이다. 태조왕건의 스승인 도선국사가 세운 흑룡사가 있고, 그곳에 세종대왕 현판도 있을 정도다. 백운계곡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제 70% 정도 진행됐다고 생각한다. 늘 관심을 가질 것이고 응원할 것이다.

△ 철도 항만국장으로 가신다. 7호선을 도입을 목전에 둔 포천과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철도와 관련된 모든 도시에 최선을 다해 큰 혜택을 드리고 싶다. 철도든 세상만사든 사회적 갈등이 원인이다.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간의 신뢰와 소통이 부족해서 일이 진전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소통 부족으로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는 경우가 너무 많다. 상호 간의 신뢰와 합리적인 중재와 포용의 리더십만 있다면, 정말 평화스럽게 잘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 포천, 어떻게 하면 더 발전할 수 있나?

-시장님 말씀대로 컴팩트 시티가 길이다. 교육, 의료복지, 상업, 문화 기능을 역세권에 집중시키는 컴팩트 시티 전략을 꼭 유지해라. 그렇게 말씀 드리고 싶다.

또 그 다음에 기타 지역까지 역으로부터 대중교통으로 편리하게 환승시켜 연결해야한다. 이것은 인구감소 시대에 반드시 지켜야 할 생존전략이다. 이것이 도시전문가로서 드릴 수 있는 조언이다.

포천의 북쪽은 한탄강이나 영북 도시재생 그리고 백운계곡, 산정호수, 일동 온천지구 같은 곳들은 관광의 거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쪽은 민자 유치사업이 들어와야 한다. 민자사업을 할때는 반드시 지역 주민들을 꼭 배려해서 그 개발 과실이 사업자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세권은 컴팩트시티로, 나머지 지역도 특색이 있게 가꾸고 슈퍼 BRT 등의 대중교통으로 연결하면 포천은 정말 멋진 도시가 될 것이다.

한탄강페스티벌을 작년에 준비했는데 못해 너무나 아쉽다. 이는 포천만의 축제가 아니라 세계적 축제가 될 수 있다. 한탄강 지질공원이 이미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유네스코로부터 지질공원 지정을 받았다. 특히 북한으로 이 한탄강 지질공원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국경을 넘는 글로벌 지질공원이 되는 것이다. 내년에 글로벌 지질포럼을 열려고 준비를 했었다. 아마 추진이 될 것 같다.

△ 도시 계획 전문가신데, 인문학적 견해도 상당해 매번 놀란다.

-인문학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가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포용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포천에는 배척하는 문화도 있다. 어느 도시든 처음에는 그렇다. 하지만 로마나 뉴욕 등 위대한 도시는 포용적이다.

폐쇄성이 있으면 기업들이 쉽게 들어오기가 어렵다. 인맥이 아닌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

결국 꿈을 이루기 위한 열쇠는 포용이라고 본다. 포천의 포는 안을 포자다. 이방인을 포용해야 한다. 포천의 포자는 왕건이 천년 전에 준 이름이다. 그런 정신으로 한반도 평화시대에 선두주자가 되어야 한다.

문화가 중요하다. 개발을 하려면 이 지역에 무슨 역사가 있는지 봐야 한다. 역사책 보다는 사람들의 반복되는 마음속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또 그 이야기를 파고들면 본질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리더가 되면 큰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 그러면 반드시 갈등이 있고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혼란이 온다. 그럴 때 길을 역사에게 물어야 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또 역사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공감대는 역사에서부터 나온다.

△ 포천에 자주 오시라.

-포천은 애정이 가득한 도시다. 제가 2년간 직접 살면서 많이 배우고 느꼈다. 의정부라는 가까운 곳에 있으니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잘되도록 도울 것이다. 1천여 공직자와 시장님, 그리고 시민들이 힘을 합치면 정말 멋진 곳이 될 수 있다. 언제나 포천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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