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광양시 어린이·사회복지급식관리지원센터장/순천대 식품영양학과 조교수 (자료=광양시)
[한국정경신문(광양)=최창윤 기자] 김부각은 바람이 좋은 날 말린다. 햇살이 적당하고 습기가 많지 않으며 바람이 미지근하지도 않고 날카롭지도 않을 때. 발효음식은 그런 자연의 리듬을 아는 사람들이 만든다. 광양은 그런 리듬을 품고 있는 도시다.
전라남도 광양을 떠올리면 많은 이들이 제철소나 매화꽃을 먼저 말하지만 이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은 '시간이 만든 맛'이다. 광양의 발효음식은 단순히 오래된 조리법이 아니라 기다림과 자연, 그리고 사람을 향한 마음이 함께 담긴 결과물이다. 김치 한 포기, 장 한 항아리에 담긴 계절과 기억은 도시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광양 옥룡에서 민박을 운영해온 오정숙 씨는 발효와 함께 살아온 사람이다. 그녀는 '매화랑매실이랑'이라는 교육장을 운영하며 매실을 활용한 발효제품을 직접 만들고 있다. 장아찌, 액기스, 장류 등 종류만 해도 50여 가지에 달한다.
그녀의 활동은 단순히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통음식 만들기 체험, 지역 여성문화센터 출강 등으로 광양의 발효문화를 도시민에게 전하고 있다. 농촌의 계절과 수고를 도시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그녀의 블로그에는 그런 일상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김부각이 잘 마를 수 있는 날씨와 기온은 물론, 장을 담그며 느낀 변화, 계절마다 재료가 다르게 반응하는 방식, 새로운 발효 음식에 대한 실험까지. 그것은 한 사람의 음식일기이자, 광양이라는 지역의 미각기록이다.
광양의 발효문화는 오정숙 씨와 같은 사람들의 손끝에서 이어져 왔다. 조용히 제 몫을 다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광양의 발효문화는 끊기지 않고 전해지고 있다. 이제 그 문화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광양시는 이러한 흐름을 제도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백운산 발효촌 동치미 마을'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필자는 어린이·사회복지급식관리지원센터장으로서 이 사업이 단순한 음식 제조 공간을 넘어선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2028년 완공을 목표로 발효 텃밭 조성, 김치 담그기 체험, 발효식품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발효문화를 도시민과 관광객에게 전달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 될 예정이다.
이곳에서 발효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 콘텐츠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광양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은 발효의 시간을 거쳐 매실청이 되고 동치미가 되고 기정떡이 된다. 동치미 마을은 이러한 발효의 과정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광양의 발효문화를 도시 밖으로 확산시키는 거점이 될 것이다.
광양의 발효는 단순히 장독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봄에 담가 여름 내내 숙성시킨 매실청 한 병, 풋풋하게 익은 싱건지(동치미) 한 그릇, 찹쌀과 시간을 빚어 만든 기정떡 한 판. 이 음식들은 냉장고 속에서는 결코 태어날 수 없는 맛을 담고 있다.
이제 광양은 발효의 시간을 지역산업과 연결할 계획이다. 발효식품 아카데미와 동치미 마을 조성은 단순히 맛을 체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발효식품 표준화 연구, 글로벌 시장 진출, 할랄 인증, MBN과 홍보 협력 등을 통해 발효문화를 지역산업으로 확장하는 비전을 품고 있다.
광양의 발효는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탄생한다. 입안에 퍼지는 풍미보다 오래 남는 건, 그것을 만든 사람의 손과 마음이다. 광양의 동치미 한 모금, 김부각 한 장에는 시간과 정성이 배어 있다.
그리고 그 맛을 오늘도 누군가는 조용히 이어가고 있다. 발효는 시간의 기록이자, 사람의 기록이다. 그리고 광양은 그 시간을 지키고 이어가, 새로운 미래로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필자는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발효식품을 넘어 광양의 발효문화와 동치미 마을이 K-푸드로 세계와 연결하는 새로운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