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빌리 엘리어트' 최명경 "영국판 ‘아리랑’ 민초들 삶에 눈물 난다"

이슬기 기자 승인 2018.02.22 16:48 | 최종 수정 2021.10.26 22:55 의견 10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배우 최명경을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만났다.

[한국정경신문=이슬기 기자] ‘아리랑’을 끝으로 뮤지컬을 하지 않으려 했다. 스스로 능력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다. 특히 ‘빌리 엘리어트’는 무대에서 홀로 부르는 넘버도 존재하기에 적지 않는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공연을 올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스스로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 말한다. ‘빌리 엘리어트’의 배우 최명경을 만났다.

최명경이 ‘빌리 엘리어트’와 만나게 된 건 운명이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아리랑’을 통해 인연을 맺었던 신시컴퍼니의 PD가 대신 오디션 원서를 넣어줬기 때문. 그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역할이라는 제안과 좋은 극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내 작품은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에 쉽게 시도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서류가 통과된 후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이란 걸 시작했다. 극을 다시 바라보고 그 안의 아버지를. 그 안의 노동자들을 마주하고자 했던 것이다. 진심으로 매 순간 무대에 서는 것. 그것이 배우 최명경이 가진 신념과 같은 뿌리였다.

“영화도 봤고 실황 공연 개봉한 것도 봤어요. 그래서 더 겁이 난 거죠. 얼마나 좋은 작품인지 아니까요. 괜히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기회가 하나둘 다가왔고 일단 최선은 다하자 생각했죠. 지금은 이 순간순간에 함께할 수 있다는게 너무 감사해요.”

특히 최명경의 마음을 울리는 건 ‘빌리 엘리어트’가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그가 일전에 참여했던 작품. 일제 강점기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아리랑’과도 닿아 있는 지점이다. 권력에 맞서 삶을 위해 파업을 이어가는 광부들을 보고 있노라면 ‘영국 판 민초들’이라는 생각에 그는 “절로 눈물이 난다. 뜨거운 그 마음이 관객에게 닿길 바란다”고 말했다.

‘빌리 엘리어트’는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지난 2005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뮤지컬이다. 영국 북부 탄광촌을 배경으로 발레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 빌리를 그린다. 최명경은 파업에 돌입한 광부이자 빌리의 아버지 재키를 연기한다.

재키 캐릭터를 이해하고 다가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엄격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는 것. 나아가 그는 수입이 많지 않은 연극을 하는 입장에서 ‘만약 내 아이가 빌리와 같은 재능이 있다면’ 하는 고민을 해봤다고 말을 이었다.

가장 먼저 그는 겁이 났다. 사랑하는 만큼 지원해줄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 재키의 마음에 공감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선택했건 하지 않았건 아버지가 선 길이 아이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건 슬프고 무서운 일이었다.

또 어려운 부분은 있었다. 극 중 재키는 빌리가 춤을 춘다는 사실을 알고 거친 언행으로 화를 낸다. 최명경은 그렇게까지 화를 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재키는 원래부터 거친 사람은 아니다. 상황과 환경, 책임감이 그를 닳게 만들었고 그렇게라도 서 있게 만들었다는 것. 최명경이 그리는 재키는 두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남자다.

큰아들 토니가 빌리에게 화를 내는 장면에서 연출은 재키도 “화가 난 게 먼저다”라는 디렉션을 줬다. 하지만 인간 최명경은 빌리의 춤을 처음 볼 때부터 마음은 다 주게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사실 나는 그 장면부터 이놈을 밀어줘야겠다는 마음이 드는데 잘 숨기고 있다”라며 웃었다.

빌리 역을 맡은 아이들이 화제가 되는 작품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거의 퇴장하지 않고 무대를 누비고 온몸을 던져 빌리의 감정을 그려낸다. 때문일까. 성인 배우들도 퇴장해 분장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무대 뒤에 모여 빌리의 연기를 지켜본다. 또 매일 함께 울면서 공연을 본다고 한다.

최명경은 빌리 역의 아이들을 보면 “공연을 처음 했던 초심이 생각난다”고 말을 이었다. 이런 무대에 한 번도 서보지 않았을 친구들이건만 모든 걸 내던지는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연극에서 “놀이터 가서 애들 노는 것 좀 봐라”하는 디렉션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그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깊은 생각이나 분석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 그대로 무대에 자신을 쏟아내고 걱정 고민 없이 신나게 즐기는 순간의 빛남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배우가 느끼고 있어요. 이 친구들이 무대에 서는 꿈을 위해 일 년 넘게 노력해왔다는 걸. 그 눈빛을 보면 ‘아 나도 저랬을까’ 싶어요. 솔직히 시간이 흐르다보니 생계를 생각하게 되잖아요. 배우라는 직업이 모두 똑같이 편안한 길을 걸을 수는 없고요. 하지만 빌리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뛰어요. 꿈 하나면 됐던 시절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에요.”

재키는 빌리의 발레를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같이 오디션 봤던 선배가 ”이 작품을 매일 보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매일 진화하는 빌리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에너지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배우라는 직업을 뒤로한 적이 있기 때문에 최명경은 지금의 무대가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는 군 제대 후 의류회사를 2년간 다녔다. 배우의 꿈을 위해 대학로로 갔지만 결국 다시 5년을 쉬었다. 생계라는 고비도 있었고 마음의 흔들림도 있었다.

결국 그는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내가 가장 행복한 건 연기할 때”라는 걸 느끼고 다시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본업인 연극뿐만 아니라 ‘인당수 사랑가’를 시작으로 여러 뮤지컬에도 참여했다. 최명경은 이 모든 것에 대해 “복 받았다”고 표현했다. 장르와 상관없이 관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또 배우들 하나하나가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극을 좋아한다.

“무대를 본 관객들이 감사하는 말을 건넬 때. 그때가 제일 ‘배우 하길 잘했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도 행복하고 관객도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은 정말 흔치 않거든요.”

끝으로 최명경은 “‘빌리 엘리어트’를 통해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 좋다”고 말을 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더욱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그는 “고선웅 선배한테 괜찮은 배우인데 마음에 화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사람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좋은 일들이 생기더라.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되고 좋은 공연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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