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균의 참견] 은행권 횡령 사고의 닮은꼴

윤성균 기자 승인 2024.06.14 07:00 의견 0
금융증권부 윤성균 기자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우리은행에서 1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700억원대 횡령 사고가 터져 은행권이 발칵 뒤집혔던 게 불과 2년 전 일이다. 이후 지주 차원에서 내부통제 체제 개편과 임직원 인식 제고, 역량 강화를 골자로 한 ‘내부통제 혁신방안’이 대대적으로 추진됐지만 이번 사고를 막지는 못했다.

이번 사고는 과거 횡령 사고와 닮은꼴이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내부통제 혁신방안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사전에 막았거나 적어도 조기 적발은 가능했어야 했다.

현재 우리은행의 자체 검사와 금융감독원의 현장검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차후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은 다음과 같다.

횡령을 저지른 직원은 지방 영업점에서 기업 대출을 담당하는 대리급 A씨다. A씨는 수차례 대출신청서와 입금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100억원 상당의 대출금을 빼돌렸다. 이렇게 빼돌린 돈은 해외 선물과 가상자산 투자에 쓰였는데 이미 60억원 가량 손실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서류를 조작해 3개월 만기 기업 단기여신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내부 모니터링을 피했다. 통상 은행 내 대출 모니터링이 3개월 이상 대출 실행 건을 대상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악용했다.

또 기업대출의 경우 은행의 전산시스템에 등록된 법인의 명의로 된 계좌로만 입금이 가능하기 때문에 A씨가 특정 법인의 명의를 도용해 계좌를 만든 다음 대출금을 유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2년 전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차장급 직원 B씨가 700억원 상당을 횡령한 방식과 수법이 겹친다. B씨는 구조조정 사후관리 업무 담당자로서 법인 매각대금 등을 서류 조작을 통해 동생 명의의 위장회사 법인 계좌에 이체하는 방식으로 회삿돈을 빼돌렸다.

지난해 BNK경남은행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 수법도 이와 유사하다. 경남은행에서 부동산PF 업무를 담당했던 부장급 직원 C씨는 수시 상환된 대출원리금을 빼돌리기 위해 대출서류를 위조하고 가족 명의 계좌로 이체하는 방법을 썼다.

우리은행의 이번 횡령은 전결권이 없는 말단 직원에 의해 벌어졌다는 점에서 과거 횡령 사고보다 더 심각하다. 기업여신이 거액 횡령사고의 통로가 됐음을 확인하고도 기본적인 결재 절차와 사후관리 작업에 대한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개인의 일탈을 내부통제 시스템만으로 막기란 불가능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횡령사고가 내부통제 문제일 수도 있지만 개인의 일탈이라는 특수성도 무시할 수 없다”며 “특히 영업점 직원들은 업무 특성상 돈의 유혹에 항상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견물생심’. 좋은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남의 돈’을 다루는 은행에서 내부통제는 이 인간 본성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은행권에서 쉴 새 없이 반복되는 크고 작은 금융사고는 결국 인간 본성이 보내는 위험 신호다. 이를 무시하지 않고 내부통제 강화의 기회 삼을 때 닮은꼴의 사고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사고 이후 우리은행 측은 “철저한 조사로 대출 실행 과정의 문제점을 파악해 유사 사례의 재발을 방지할 것”이라며 “관련 직원에 대한 엄중 문책과 전 직원 교육으로 내부통제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재차 약속했다.

이번 사고로 우리은행이 대오각성할지 아니면 또 한 번의 공염불에 그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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