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영화 ‘발신제한’과 사모펀드 사태

윤성균 기자 승인 2021.08.27 10:05 의견 0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최근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 대책위(이하 대책위)가 윤종원 IBK기업은행장과 은행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발신 표시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인지 영화 ‘발신제한’의 감상문인지 애매한 이 글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여럿 있다.

영화 ‘발신제한’은 일반관객들에게는 명품 조연 배우 조우진의 첫번째 주연작으로 주목 받은 영화지만 금융권에서는 다른 의미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그간 우리나라 금융업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2008년 키코(KIKO)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19년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를 연상케 하는 대형금융사고를 중심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금융상품을 불완전판매하고도 그 사실을 은폐한 은행센터장과 그로 인해 가족을 잃은 피해자를 등장시킨다. 피해자가 폭탄테러로 사적제재에 나서면서 이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뒤바뀌게 되는 이야기다.

디스커버리펀드를 비롯해 사모펀드 투자 피해자들이 이 영화에 깊이 감정이입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영화에는 사모펀드 피해자의 억울한 입장을 대변하는 장면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를테면 수많은 피해자들이 은행 창구에 몰려든 상황에서 한 피해자가 “저한테는 분명히 안전하다고 했단 말이에요”라고 호소하는 장면. 이에 은행 직원은 “저희도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라고 답하는데 이는 현실의 사모펀드 사태와 판박이다.

아니면 영화 속 피해자들이 내건 현수막의 문구들이 실제 사모펀드 피해자들의 현수막 문구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을 느꼈으리라 짐작된다.

최창석 대책위원장은 성명서에서 “윤종원 행장과 기업은행 PB들이 이 영화를 꼭 볼 것을 추천한다”며 “아니 차라리 코로나19가 풀리면 피해자들과 함께 관람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후 박진감 흥미와 스릴을 뒤로 하고 뒤돌아 설 수 있겠지만 저와 우리 피해자들 그리고 양심 있는 은행 직원들이라면 그렇게 쉽게 뒤 돌아설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의 설정과 현실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는 사연과 사건을 과장하고 선악을 뚜렷하게 구분하는데 현실이 꼭 영화같지는 않아서다. 그럼에도 영화를 통해 공감하고 분노하고 위안을 얻는 사모펀드 피해자들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영화가 피해자와 금융사 간 소통과 협력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지난 2019년 10월 라임펀드를 시작으로 사모펀드들이 잇따라 환매 중단되며 발생했던 일련의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펀드 주요 판매사와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징계가 내려졌고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 절차도 상당 부분 진행됐지만 곳곳에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조정안을 거부한 피해자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다. 법정에서 싸우거나 길거리 투쟁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다. 부디 영화와 같은 극단적 선택은 없길 바란다.

금융사들도 금융당국만 바라볼게 아니라 피해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금융의 본질이 결국 고객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금융사들이 모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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