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75년 동업을 이어온 고려아연과 영풍이 경영권 분쟁 1년 만에 미국 법정에서도 맞붙었다. 적대적 M&A 공방과 배임·고가 인수 의혹이 법정으로 번지며 양측 갈등은 장기전으로 굳어졌다.
지난해 9월 시작된 분쟁은 공개매수와 자사주 맞대응, 경영협력계약 논란을 거쳐 올 하반기 미국 뉴욕 연방법원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관련 증거개시 소송까지 확산됐다. 내년 3월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 장기화된 고려아연·영풍·MBK 경영권 다툼, 미국 소송전으로 비화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간 경영권 분쟁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양측이 보도자료를 통해 신경전을 지속하며 갈등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장기화된 분쟁은 적대적 M&A 논란, 경영협력계약 해석상의 갈등 그리고 책임 소재 공방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뉴욕 법원이 영풍이 신청한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절차를 승인하면서 소송전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영풍은 지난해 인수한 미국 전자폐기물 처리업체 이그니오 홀딩스의 고가 매입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뉴욕 남부 연방법원에 증거개시를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고려아연 미국 자회사 페달포인트 홀딩스와 임원들에 대한 소환장을 발부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소환장의 무효를 주장하며 맞섰다. 영풍이 증인 회유를 시도했다고 반격했다. 영풍은 이러한 주장이 근거 없으며 법적·윤리적 위반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은 ‘경영협력계약’을 두고도 격렬히 맞서고 있다. 고려아연은 MBK파트너스 추천 이사가 영풍보다 많다고 주장한다. 합산 지분 ‘50%+1주’ 의결권을 MBK가 행사하며 영풍이 MBK에 공동매각요구권을 줬다고 주장한다.
고려아연은 “영풍이 핵심 자산을 헐값에 넘겼다”고 비판했다. 이에 영풍은 “계약 내용은 공개매수 신고서에 투명하게 공개됐다”며 근거 없는 해석이라 반박했다.
최대주주 지위와 경영권 행사 책임을 두고도 양측 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아연은 “영풍이 MBK와 최대주주 자리를 넘기고 기습 공개매수로 이사회 장악을 시도했다”며 ‘적대적 M&A’라고 규정했다.
영풍은 “최대주주의 주주권 행사는 정당한 권리”라고 맞서며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이 자사주 맞교환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지분 희석을 초래해 분쟁을 키운 책임이 있다고 반박했다.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광일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 장기 경영권 갈등 속 재무 부담·조직 불안 가중..내년 주총에 관심 집중
지난해 공개매수 전쟁과 자사주 맞대응 과정에서 영풍·MBK 측 매수가가는 66만원에서 83만원까지 상승했다. 고려아연도 자사주 매입가를 89만 원으로 맞서며 양측 모두 차입금 급증 등 재무 부담이 커졌다.
올해 3월 주총에서는 법원이 영풍 의결권 일부를 제한하며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이 경영권을 방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내년 3월 임기 만료 예정인 이사 교체가 예정됐다. 경영권 향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장기간 분쟁으로 내부 조직 불안도 심화됐다. 임직원의 절반 이상이 고용 불안과 이직 고민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주가 변동성 역시 지속되며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분쟁이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리스크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고 평가한다. 내년 주총에서 이사 선임 결과가 이번 경영권 다툼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양측이 법적 다툼과 주주 설득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장기전에 접어들면서 양측 모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며 "내년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구성 결과가 경영권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