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미국 이민당국이 한국인 300여명을 구금한 초유의 사태가 터지자 정부가 '뒤늦게' 주요 대기업들과 긴급회동을 갖고 비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관행적으로 활용해온 무비자 출장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한국경제인협회와 공동으로 대미 투자기업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한국경제인협회와 공동으로 대미 투자기업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박종원 산업부 통상차관보가 주재한 이번 간담회에는 현대차그룹,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HD현대, 한화솔루션, LS 등 대미 투자 주요 기업 10곳이 참석했다.

이번 단속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조지아주 LG에너지솔루션-현대차 합작 배터리 공장이다. 2023년부터 6조원을 투입해 건설 중인 이 공장은 연간 전기차 30만대 분량의 배터리셀을 생산할 예정이었다. 내년 가동을 목표로 막판 설비 작업이 한창이던 중 구금 사태가 터졌다.

현대차의 미국 메타플랜트 생산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현재 72.6% 수준인 가동률을 끌어올리기 어려워졌다. 2028년까지 50만대로 확대하려던 증설 계획도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주요 기업들은 즉각 미국 출장 중단 조치를 내렸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고객사 면담 등을 제외한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했다. 현재 출장 중인 직원들에게는 즉시 귀국하거나 숙소 대기 지침을 내렸다.

현대차도 9월 둘째 주 미국 출장 예정자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경우가 아니면 보류하라"고 권고했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미국 측의 추가 단속 예고다.

톰 호먼 미국 국경안보총괄책임자는 7일 CNN 인터뷰에서 "조지아주 같은 단속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한국 기업들이 관행적으로 활용해온 전자여행허가(ESTA)의 한계다. 구금된 한국인 대부분이 ESTA나 B-1(단기 상용) 비자 소지자였다. 이들 비자로는 미국 현지 취업 활동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식 취업비자 발급에는 수개월이 걸리고 절차도 까다롭다. 지난해 B-1 비자 거절률만 27.8%에 달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날 "유사 사례 방지를 위해 비자 체계 점검·개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기업들 의견을 토대로 단기 파견용 비자 카테고리 신설, 비자 제도 유연 운영 등을 미국 측과 협의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