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정부와 여론의 거센 ‘이자 장사’ 지적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의 예대금리차가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예대금리차 공시 제도가 정작 금리 인하 유도에는 실패하면서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8월 10일 서울 시내 한 은행 앞에 대출 관련 홍보물이 붙어있다. (사진=연합뉴스)

2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지난 7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 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는 평균 1.46%포인트를 기록했다. 예대금리차 공시 제도는 금리 정보를 공개해 과도한 예대마진을 막고 은행간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됐다. 도입 이후 예대금리차가 일시적으로 축소되기도 했지만 다시 본래 수준으로 돌아가 장기적인 효과에 의문을 낳고 있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이 1.51%포인트로 가장 컸다. 이어 신한은행 1.50%포인트, NH농협은행 1.47%포인트, 하나은행 1.42%포인트, 우리은행 1.41%포인트 순이었다.

대부분 은행이 공시 제도 도입 초기인 2022년 8월 수준으로 예대금리차가 확대됐다. 당시 은행별 가계 예대금리차는 농협은행 1.73%포인트, 국민은행 1.40%포인트, 우리은행 1.37%포인트, 신한은행 1.36%포인트, 하나은행 1.09%포인트였다.

예대금리차가 다시 벌어진 핵심 요인으로는 엇박자를 내는 금융 정책이 꼽힌다. 기준금리 인하 기조에 따라 예금금리는 빠르게 하락했다. 반면 대출금리는 금융당국의 강력한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 가로막혀 인하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실제로 7월 높은 예대금리차를 기록한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의 경우 정책서민금융 제외 가계대출금리는 0.05%포인트씩 올랐다. 같은 기간 저축성수신금리는 국민은행이 0.05%포인트, 농협은행은 0.02%포인트씩 내린 것과 상반된다.

금융당국의 6.27 가계부채 관리 방안으로 은행별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목표가 50% 감축된 것도 대출금리 인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대금리차 확대에 대한 금융당국과 여론의 반응은 차갑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전날 예금보호한도 상향 현장 간담회에서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취약 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는데 은행권에서만 예대마진 기반의 높은 수익성을 누리고 있다는 비판을 무시할 수 없다”며 “기준금리가 인하되는데 국민들이 체감하는 예대금리차가 지속된다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금융권 스스로 가산금리 수준이나 체계를 살펴봐 달라”며 “예대마진 중심의 영업 행태에서 벗어나 생산적 분야로 자금 공급돼야 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라고 강조했다.

은행권은 예대금리차 축소를 위해서는 정책적 모순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대금리차 공시를 통해 금리 인하 경쟁을 유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대출금리 인하를 억제하는 정책적 상황이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책 간의 모순으로 인해 예대금리차 공시는 정보는 공개하되 실질적 변화는 없는 형식적 제도에 머물러 있다”라며 “당국 압박에 반짝 금리 인하 효과는 나타나겠지만 구조적인 변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