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들을 겨냥한 ‘자물쇠 깨진 금고’의 민낯이 현실로 드러났다. 올 상반기 5대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가 통계 작성 이래 '반기 최고치'를 경신하면서다.

금융당국의 고강도 쇄신 압박과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동시에 받아 든 은행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 본점 전경 (사진=각사)

1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별 ‘은행 경영현황 보고서’를 보면 올 상반기 총 65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1분기 23건에 이어 2분기에만 42건이 추가로 발생하며 사고 건수가 크게 늘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17건으로 가장 많았고 KB국민은행이 15건, 우리은행 9건, NH농협은행 7건 순이었다.

이는 2014년 금융사고 공시 제도 도입 이래 반기 기준 최다 기록이다. 특히 2분기 42건은 단일 분기 기준으로도 역대 최고 수준에 해당한다.

사고 규모 면에서는 10억원 미만 사고가 44건으로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사고 금액이 커지는 추세가 뚜렷했다. 1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 사고는 13건, 100억원 이상 대형 사고도 3건이나 발생했다.

특히 사고금액이 10억원을 넘어 공시 의무가 발생한 16건의 총 피해액은 880억7631만원에 달했다.

은행별 공시 기준 피해액을 보면 하나은행이 488억4511만원(5건)으로 가장 컸다. 이어 농협은행 221억5072만원, 국민은행 133억1047만원(5건), 신한은행 37억7001만원(2건) 순이었다. 우리은행은 공시 대상 사고가 없었다.

금융사고 피해 규모가 커진 것은 횡령·배임 사고의 규모도 컸고 외부 조직과 연계된 사기 대출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상반기 사고 유형을 보면 횡령 7건, 배임 3건에 비해 사기는 34건에 달했다. 특히 하나은행에서만 14건의 사기 사고가 집중됐다.

5대 시중은행의 금융사고는 공시 제도 도입 이후 꾸준히 감소해 왔다. 2015년 97건이던 금융사고는 매년 줄어 2023년 36건으로 최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 89건으로 급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65건이 발생하면서 최악의 추세로 치닫고 있다.

이는 강성 소비자보호 성향으로 알려진 이찬진 금감원장 체제에서 자칫 사정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이미 이 원장은 지난달 28일 은행장들과의 첫 상견례에서 “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은 자물쇠가 깨진 금고와 다를 바 없다”며 “비용 절감을 위해 허술한 자물쇠가 달린 금고를 사용한다면 이는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원장은 은행장들에게 AI 등을 활용한 혁신적·효율적 내부통제 제고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AI를 활용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 중”이라면서 “디지털 신기술을 검사 업무 전반에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