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우용하 기자] 지난달 서울세종고속도로 교각 붕괴 사고로부터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잇따라 사망사고가 추가로 발생했다.
반복된 사망사고로 현장 관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고 건설 현장도 본격적인 해빙기에 들어섬에 따라 건설업계는 안전 점검과 위험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지난달 25일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교각 위에 설치 중이던 교량 상판 구조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상부에서 추락한 근로자 10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사진은 26일 사고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서울시 동대문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납품업체 운전원인 30대 근로자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근로자는 화물차에서 쇠 파이프를 내리는 작업 중 자재에 깔리게 된 것으로 보이며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후 병원에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현재 서울경찰청은 부분 작업 중지를 명령하고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고용노동부도 사고 발생 직후 시공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위반 여부를 중심으로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란 사업이나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안전과 보건을 확보하도록 경영책임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책임자에게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정한 법률이다.
이번 사고에 앞서 10일에는 평택시 화양도시개발구역 힐스테이트 아파트 건설 현장에선 근로자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달 25일 4명의 사망자와 6명의 부상자를 초래한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13일만에 현대엔지니어링 시공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반복된 것이다.
평택 힐스테이트 참사는 추락사고로 확인됐다. 현장 관계자들은 타워크레인으로 외벽 갱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지상에서 갱폼의 철제고리를 해체하던 중 타워크레인이 움직여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크레인이 움직이면서 6m 높이에서 떨어진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동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3m 높이에서 추락한 다른 근로자는 왼쪽 발목 부상을 입었다.
사고 재발 방지 약속에도 불구하고 추가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현대엔지니어링은 전국 공사 현장에 대한 작업 중단이라는 조치를 내렸다. 총 80곳의 현장이 멈추게 됐으며 각 공사장의 상황에 맞춘 세부 대책 마련 후 작업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일각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에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보름 새 3건의 사망사고가 잇따랐고 더불어민주당 박용갑 의원이 공개한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국내 주요 건설사의 공사 현장 사망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25% 상승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망사고 건설사 명단 발표를 멈추면서 안전 관리 활동이 느슨해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2019년부터 발표됐던 사망사고 건설사 명단은 지난 2023년 3분기 이후 중단된 상태다.
아파트 시공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연속되자 건설사들은 작업자들의 안전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특히 해빙기에 접어들어 지반이 약해짐에 따라 점검·관리 활동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먼저 롯데건설은 7일 수도권과 영남권, 호남권 안전점검센터를 개소했다. 권역별 상시점검 체계를 구축해 중대 사고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전국 3곳의 안전점검센터엔 기술 인력도 배치해 시공 현장에서의 안전 점검 지원과 지도 활동도 펼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경영전략회의에선 ‘안전 관리체계 고도화’를 3대 핵심전략으로 설정했으며 작업 중지권을 적극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 조성에 나설 방침이다.
HL D&I한라도 최고경영자 주관 재해예방 특별안전교육을 진행하며 안전 관리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위험신고센터와 신고포상제도도 확대해 안전한 작업 환경 조성에 총력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와 국토부는 지난달 27일 ‘건설 현장 추락사고 예방 대책’을 발표해 전국 2만2000개 건설 현장을 대상으로 집중 점검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해빙기나 동절기 등 현장 환경이 취약해지는 시기에 점검을 진행할 방침이고 사망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대해선 특별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발표가 중단됐던 사망사고 건설사 명단 공개도 재개한다. 현재 명단 공개에 앞서 건설기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을 예고하며 법률 정비를 준비 중이다.
이에 건설업계 관계자는 “국토부가 명단 공개에 나서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자칫 건설사 낙인찍기용으로 여겨지게 될까봐 우려된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도 사실상 미비한 만큼 차라리 사고 예방을 위해선 명단 공개보단 법률 보완과 함께 안전 관련 비용·시간 투자 지원 대책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번 사고가 발생하면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보니 이럴 때일수록 더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하지만 아무리 안전 조치를 보완해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 건설 현장이라 좀처럼 위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