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서재필 기자] 올해 초 정부가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로 불리는 결혼 서비스에 대한 가격 표시를 의무화하는 웨딩 서비스 가격표시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결혼 당사자들의 정보 부족으로 과도한 추가 요금을 요구받거나 합리적인 가격 비교가 어려워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웨딩산업의 ‘관행’이었던 깜깜이 웨딩이 사라질 수 있어 많은 2030대 예비 신혼부부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기자도 결혼을 앞두고 있고 깜깜이 가격에 숨이 턱 막힌 기억이 있다. 올해 초 예비 배우자와 결혼을 결정하고 준비하던 과정에서 정보를 얻을 곳이 마땅치 않아 결혼박람회에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안내를 해주던 플래너에게 여러 설명을 듣고 현장에서 스드메 업체와 예복 업체를 결정하고 10% 계약금을 지불했다.
시간이 지나 웨딩 촬영까지 끝내고 나서 전혀 예상치 못한 ‘추가금 폭탄’에 말문이 막혔다.
청담동 R 스튜디오에서 6시간에 걸쳐 웨딩촬영을 마친 후 직원은 “오랜 시간 촬영 고생 많으셨어요. 원본 파일(USB) 수령하시는 데 40만원입니다”고 말했다.
얼떨결에 40만원을 지불했고 2주 뒤 웨딩 앨범 제작과 보정을 위해 수백 장 중 몇 십장 사진을 선택하기 위해 다시 해당 스튜디오를 찾았다.
“20장은 서비스로 제공되는데, 20장 초과하셨으니 한 장당 3만 3000원, 한 장에 사진이 두 장 들어가는 경우는 장당 2만 2000원 해서 가격이..”
순간 “줄일게요. 잠시만요”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순간 스튜디오 안내 직원의 표정이 굳어졌고 분위기는 얼었다. 심호흡을 하고 예비 신부와 함께 사진 장 수를 줄였더니 또 장애물이 나타났다.
“이 앨범 틀은 기본 제공되는데 요즘은 아크릴 액자로 많이들 하세요. 이렇게 하면 30만원이 추가됩니다”
이렇게 얼떨결에 총 70만원 이상을 추가로 지불하고 나왔다. 앞서 올해 초 웨딩박람회에서 스드메 업체 선정에 230만원을 이미 지불하고 난 뒤의 일이다.
비단 스튜디오의 문제만이 아니다. ‘결혼 날짜는 웨딩홀이 잡는다’는 말이 생길 만큼 엔데믹 이후 예식장 수요가 높아지면서 성수기인 5월과 10월 예식은 1년 전부터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보증 인원’이다.
웨딩홀 예약은 200~300명 보증 인원에 대한 기본 가격을 설정해 놓는다. 보증 인원보다 더 적은 인원이 오더라도 해당 금액은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
웨딩홀 직원은 “저희가 홀 리뉴얼 계획도 있고 10월이면 성수기라 식대 비용은 이 가격(계약서에 기재된)보다 올라가요”라는 말을 더했다.
일련의 과정들을 직접 겪고 나니 우리나라 혼인 건수 감소의 이유를 깨닫게 됐다. 주택 문제와 육아도 큰 산이지만 첫 관문인 결혼식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돈의 늪’에 빠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청이 올해 3월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혼인 건수는 19만 3000여건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40%가 줄었다.
또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5월 발표한 ‘결혼·출산·양육 인식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성의 13.3%, 미혼 여성의 33.7%는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 의사가 없다는 응답자 중 80.8%는 ‘결혼식 비용, 신혼집 마련 등 경제적 부담’을 비혼 사유로 꼽았다. 그만큼 결혼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업체별 서비스 품질과 그에 따른 가격을 보고 미리 적정 예산을 짤 수 있었다면 ‘인생에 한번 뿐’인 결혼식 준비에 흔쾌이 지갑을 열었을 지도 모르겠다. 웨딩플래너도, 스튜디오 직원도 사전에 ‘추가금이 붙을 수 있다’는 공지를 전혀 하지 않는 관행에 피로감만 쌓인 셈이다.
지난 5년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예식 및 결혼준비대행서비스와 관련된 피해구제 신청만 2300여건에 달한다. 정부의 웨딩서비스 가격표시제는 사실상 늑장 대응이다.
늦은 만큼 꼼꼼하고 실효성 높은 정책을 기대하고 있다. 확실한 실태조사도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가격표시제 시행을 앞두고 지금 웨딩 업체들이 담합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불합리적인 조항으로 과다한 위약금을 붙이지는 않는지, ‘관행’이라는 말 속에 ‘끼워팔기’를 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내년부터는 모든 청년들이 정확한 예산으로 결혼 준비를 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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