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간담회를 앞두고 은행권에 ‘횡재세’ 재추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그간 이 대표가 일회성 상생금융을 비판해온 만큼 보다 급진적인 정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우려에서다.
서울 용산구의 시중은행 ATM 앞을 시민이 지나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20일 은행연합회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은행권 현장 간담회가 열린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재명 대표와 조용병 은행연합회 회장, 6대 시중은행장(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간담회 의제는 ‘상생금융 확대’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 대표와 민주당이 본격적인 민생 행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권에서는 ‘올 것이 왔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 대표는 민생경제 안정을 위해 은행권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 왔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진 만큼 유력 차기 대선 주자인 이 대표가 현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 상생금융과 다른 형태의 지원책을 요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이 대표는 그간 현 정권의 상생금융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은행권이 일정 부담금을 납부하는 방식은 효과가 일시적이고 직권 남용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제시한 해법은 법률 개정을 통한 제도화·법제화다. 이른바 횡재세 도입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1월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대다수 국민들의 고통 속에서, 고통을 기회로 얻는 과도한 이익의 일부를 제대로 사용하자는 것이 서구 선진국이 도입하는 횡재세”라며 “자릿세를 뜯을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세금을 걷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과 야당 의원 55명은 상생금융 기여금 부과를 골자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부담금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금융회사가 지난 5년 동안의 평균 순이자수익 대비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수익을 얻을 경우 해당 초과이익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상생금융 기여금을 부과·징수하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한 은행의 5년 평균이자순수익이 1조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평균 이자순수익의 120%는 1조2000억원이다. 만약 이 은행의 연간 이자순수익이 1조6000억원이었다면 평균 이자순수익 120% 대비 초과이자이익인 4000억원에 대해서 40%인 1600억원을 기여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의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지난 5년간(2018~2023년) 평균 이자순수익은 6조3203억원이다. 이들 은행은 지난해 3분기까지 이미 평균 5조8283억원의 이자순수익을 냈다.
이 대표가 당론으로 추진한 횡재세 도입은 결국 흐지부지됐다. 이중과세 논란이 제기된 데다가 지난해 은행권에서 횡재세 수준에 준하는 2조1000억원 수준의 상생금융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후 이 대표는 횡재세 성격의 정책 도입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최고위에서 “민주당은 지난해 유동적인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도록 횡재세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며 “정부는 막연히 희망 주문만 외울 게 아니라 실질적인 조치로 국민 부담을 덜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이미 서민금융지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은행의 서민금융진흥원 출연 비율을 2배 높이는 법안으로 사실상 횡재세 부과와 유사한 효과를 낸다.
대출 금리 산정 체계의 합리화를 골자로 한 은행법 일부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대출금리 산정체계에 대한 공시제도를 법률로 규정해 은행의 목표이익률 등 가산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세부항목을 주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금융당국이 개선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일 간담회에서 가산금리 인하도 주요 의제로 꼽힌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있을지 알 수 없다”면서도 “현 정권에서 상생금융으로 적잖은 효과를 봤기 때문에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