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국회에 일명 ‘횡재세’ 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은행 당사자 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전문가들도 비판적 인식을 드러냈다. 이들은 은행의 이익 일부를 사회로 환원하자는 주장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초과이익에 세금에 부여하는 방식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노광표 금융산업공익재단 이사는 전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정부 주도의 ‘상생 금융’은 그 효과도 없고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입법의 필요와 시행에 동의한다”면서도 “횡재세 입법 시도는 인기영합적(?) 대응 또는 부분적 대응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보다 근본적인 은행산업의 구조 개편 및 조세제도 개혁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배진교 정의당 의원과 함께 ‘은행권 고수익 논란, 횡재세가 답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권 비판과 사회적 책임을 둘러싼 관치 논란 여파로 야당에서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면서 은행권 안팎으로 찬반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노광표 이사는 “내년 총선을 앞둔 짧은 시점에 횡재세 도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입법 의도와 달리 법 시행 과정에서 형해화될 가능성도 커 보인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횡재세 법안이 5년 평균 120%를 넘는 순이자수익 중 최대 40% 이내로 기여금을 부과하되 구체적 수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했는데 이를 0%로 하면 사실상 무효화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가 내년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으며 이는 올해 하반기부터 은행권의 무수익여신 잔액 증가로 확인되고 있다”며 “무수익여신은 특히 가계보다 기업 대출에서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므로 횡재세 논의와 함께 은행의 건전성 확보 방안도 같이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횡재세 부과 입법 추진을 위해서는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설득력 제고와 정당성 확보를 위한 좀더 다양한 논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익준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높은 대출 이자 부담에 노출된 사회에 은행이 기여할 필요가 있다는 관점에서 은행의 이익 일부를 사회로 환원하자는 주장의 취지는 공감한다”면서도 “최근 고수익이 은행의 귀책이라거나 은행이 약탈적 금융을 했기 때문에, 그 탐욕에 징벌을 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 연구위원은 “최근 대출 총량의 증가는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기업 및 자영업 지원과 부동산 및 주택 관련 대출 증가의 결과라는 점에서 횡재세 부과 추진 취지와는 매우 다른 스토리이기도 하다”며 “횡재세는 시행 과정에서 그 효과를 회피하거나 오히려 악화 된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이 적정 수준에서 횡재세를 부담하려면 이자이익을 조정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표면 금리가 높고 리스크가 높은 저신용 내지 한계 상황의 대출 포트폴리오를 줄이고 고신용 고담보 대출을 우선 취급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횡재세를 통해 지원하려는 저신용 부문과 높은 리스크를 안고 있는 혁신 부문에 오히려 자금이 과소 공급될 수 있다.
횡재세가 전시 또는 경제 위기, 초인플레이션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부과되는 일시적인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은행업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목됐다.
이한진 사무금융노조 정책전문위원은 “횡재세는 기업이 비정상적으로 유리한 시장 요인으로 인해 높은 수익을 올렸을 때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며 “현실의 은행업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모순, 즉 ‘자금조달의 사회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자산운용은 주주이익극대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해 상충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정책전문위원에 따르면 은행 운용자금 조달은 불특정다수의 예금이나 사회적으로 부여된 신용 창출 기능에 의존하지만 은행의 자산운용은 국민경제적 측면에서의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아닌 주주이익 극대화 차원에서 운용되기 때문에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
이 정책전문위원은 “은행은 신용 창출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현재 은행이 지닌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은행에 대한 소유·지배구조 개선 및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노동자들은 정부의 잘못된 금융정책을 견제하고 금융노조와 정책연대를 강화해야 할 여당이 횡재세를 발의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국가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금융정책을 전문가, 이해당사자 등의 주도아래 면밀하게 검토되지 않고 속성으로 추진된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면서 “충선을 앞에 두고 던져지는 신중하지 못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한 피해는 금융취약계층과 서민들, 금융노동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지식과 문화가 있는 뉴스> ⓒ한국정경신문 | 상업적 용도로 무단 전제,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