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새 일왕에게 보내는 불편한 덕담

-왜 일본은 사과와 망언을 반복하는가

김재성 주필 승인 2019.05.02 13:08 의견 9


[한국정경신문=김재성주필] 일본이 새 천황을 맞이했다. 1일 즉위한 나루히토(德仁)는 "세계의 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했다. 새 시대의 연호는 레이와(令和), 아버지 아키히토(明仁)의 헤이세이(平成)가 평(平)에 방점이 있다면 레이와(令和)는 화(和)에 방점이 있다. 둘을 연결하면 평화가 된다. 레이와(令和)는 할아버지 쇼와(昭和)를 계승하는 의미도 있다. 

일본인들은 화(和)를 귀히 여긴다. 일본정신(야마도大和)이기 때문이다. 화(和)는 피리소리가 고루 퍼져나간다는 뜻과 함께 수확한 벼(禾)를 고루 나눠먹는다(口)는 뜻이 있다. 그래서 화합, 화목, 평화의 뜻으로 쓰인다.

화(和)의 참 뜻은 서로 다른 것과 어울림이다. 핏줄, 개성, 문화, 가치관이 다른 사람, 집단, 민족을 존중하는 다양성이다. 이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한다. 그 반대는 동이불화(同而不和)다. 다른 사람이 자기와 같아지기를 강요하고 다른 민족을 복속시키려 한다. 제국주의적 평화가 동이불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평화를 위한 굳건한 행보를  기대한다"고 했다. ‘기억과 평화’를 강조한 것이다. ‘기억하지 않는 나쁜 기억은 반복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야마도(大和)민족 답지 않게 소화(昭和)시대에 저지른 전쟁범죄를 기억하려하지 않는다. 같은 전범 국가인데도 독일이 유럽의 이웃나라에 철저하게 배상하고 전범의 단죄에 협력하는 데 일본은 그 반대다.  

그나마 전 후 첫 공식사과인 1990년 5월, 아키히토의 ‘통석(痛惜)의 염(念)’도 소설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가 만들어 낸 진지하되 통렬하지 않은 단어라고 하지 않은가. 물론 더 진지한 사과도 있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게이죠(小淵惠三)총리 공동선언에 들어간 ‘통절한 반성’ 이다. 문제는 그래 놓고 다시 망언을 한다는 점이다. 

독일이 반성과 배상을 통한 화해를 새 출발점으로 삼았다면 일본은 시간을 끌면서 배상을 최소화하고 대외용 사과와 국내용 망언을 반복하는 술책을 쓴다. 그리고 배상은 경제적 진출의 발판으로 삼은 것이었다. 수출이 불가능한 공장설비, 자본재를 제공하여 친숙한 관계를 맺고 진출기반을 구축했다. 이 내용은 우리나라 재정경제부에 해당하는 일본 대장성(大藏省)이 발행한 재정사(財政史)의 공식기록이다. 

왜 일본은 패전한 전범국답지 않게 이토록 오만한가? 미국의 배경을 믿기 때문이다. 패전 후 일본은 천황의 주변과 초대 총리가 되는 요시다 시게루 (吉田茂)를 중심으로 맥아더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전쟁책임을 도죠 히데끼(東條英機)등 일부 육군에 한정시켰다. 그리고 살아남아 일본의 주류가 된 보수정권은 철저하게 미국에 복종하면서 한 때 짓밟았던 나라들에 대해서는 오만하게 구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 우파와 손을 잡은 속사정은 두 가지다. 전쟁주도 세력을 청산하면 전쟁에 반대했던 공산당이 집권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국, 소련, 북한 등 동남아가 붉은 색으로 도배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래서 맥아더는 천황을 비롯한 해, 공군 수뇌부, 심지어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장 이시이 지로(石井四郞) 중장도 재판에서 면제해 주었다. 물론 실험자료는 모두 미국에 넘기는 조건으로.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은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폭을 투하했다. 희생자가 어림잡아 20여 만명. 두 번에 걸쳐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번쩍하는 섬광을 본 순간 삶은 고기처럼 흐물흐물해진 것이다. 한국인 피해자도 2만 여명으로 추산한다. 전 후 일본은 국제사회에 이 부분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살려준 보답인 것이다.

다행히 일본에는 양심적인 지식인 있어 이 같은 내용의 성찰적 기록들이 나오고 있다. 여기 적은 내용들 역시 다나까 히로시(田中宏) 등 6명의 일본 지식인이 공동으로 집필한 ‘기억과 망각’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아직 희망이 있다.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지 않겠다> 고 했는데 부끄러운 과거를 계속 상기 시키는 지식인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름다운 평화, 레이와(令和)를 시대정신으로 천명한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에 즈음하여 보내는 불편한 덕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