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박세아 기자] "집 가진 게 죄는 아니잖아요. 임대차3법 등 임차인들 보호 정책은 많이 나오는데, 임대인들 보호책은 뭐가 있나요?"
서울 영등포구에 아파트가 아닌 빌라를 가지고 임대를 주고 있는 집주인 A씨는 사람들의 빌라 기피 현상과 함께 최근 집값 하락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A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보험이다. 보증보험 없이 입주하지 않으려는 세입자들이다. 그는 보증보험을 가입하기 싫은 게 아니라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A씨는 "집을 보러 오는 세입자들마다 보증보험을 전제로 집을 보러 와요. 그들한텐 내 전세금을 지킬 안전한 수단이니 당연한 거죠. 근데 공시지가도 낮아졌고 보증공사에서 인정하는 전세가가 낮아지면서 제가 가진 빌라는 보증보험 가입 기준에서 배제돼요"라고 말했다.
A씨 빌라는 왜 보증보험 가입 기준에서 배제된다는 것일까. 이와 같은 현상은 과거와 현재의 달라진 시장구조에 기인한다.
과거에는 공시지가(집값)의 150%까지 전세가를 산정할 수 있었고 이 상태에서 보증보험 가입도 가능했다. 쉽게 말해 공시지가가 2억원인 빌라가 있을 때 3억원의 전세까지는 안심대출 및 보증보험이 가능했다. 과거에는 전세가율과 집값을 동일선상에 둬 3억원이 집값이자 전세가 인정 범위에 속했다.
하지만 현재는 공시지가가 떨어진 데다 공시지가의 140%까지 집값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똑같이 공시지가가 2억원인 빌라가 있을때 현재는 2억8000만원까지만 집값을 인정받는다. 이에 집값과 전세가율이 달라진 현재에는 인정받는 전세가율이 더 떨어지게 됐다. 보증공사에서는 2억8000만원에서 90%까지 적용한 전세가율을 가진 빌라에만 보증보험 가입을 허락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126%까지 전세가율이 하락한다. 가격으로 따지면 2억5200만원이다.
■ 전세가율↓, 제도손질 왜 했나..임대인 후폭풍
이는 정부에서 도미노처럼 터지는 전세사고의 원인을 깡통전세로 초점을 맞추고 제도를 손질하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서울 강서구와 같이 집값보다 전세가가 높은 깡통전세가 많은 경우 전세사고가 터질 위험이 커 공시지가를 낮춰 전세금에 제한을 뒀다. 또 보증공사에서 보험 가입 한도를 줄이면서 집주인들이 전세가를 높이지 못하게 바꾼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이와 같은 변화가 깡통전세의 위험을 낮추고 전세가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즉 임대인의 부담이 커지면서 또다른 전세사고 위험성이 커지고 임차인까지 주거비 상승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목돈을 마련해서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 처한 임대인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하락한 전세가율만큼 세입자에게 목돈을 마련해 돌려줘야 하지만 쉽지 않다. 이에 세입자는 경매 실행이나 임차권 등기 등을 통보한다. 다시 다른 세입자를 구해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이런 집을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들어오지 않으려고 하는 세입자들로 인해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책으로 인해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다.
서울 강서구에 임대를 하는 B씨도 이런 상황을 겪고 있다.
B씨는 "당장 1인당 5200만원 씩 돌려줘야 하는데 여기 빌라 하나 가지고 있을 뿐이지. 목돈 마련하기 힘들어요. 일부러 가격을 올리는 악성 임대인도 있겠죠. 근데 보통 빌라 주인들은 안 그래요"라며 "한창 시장 좋을 때 그만큼 수요가 많아서 우리집 포함해서 근처 전세가가 자연스럽게 다 올랐었어요. 근데 이제는 정책이 바뀌고 하루아침에 전세가율 때문에 돌려줘야 하는 목돈이 생겨서 머리가 아파요. 시간이라도 좀 줬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 세입자들, 과연 안전한 시장에서 살고있나
그렇다면 세입자 상황은 나아졌을까. 오히려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은 더 커졌다. 최근 전세 사고에 대한 우려와 함께 보증보험 가입이 되는 매물을 찾다 보니 오히려 월세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불안한 전세 시장의 대안으로 찾은 월세 시장을 가보니 다달이 부담해야 하는 가격이 100만원에 육박한다. 부동산 플랫폼업체 다방에 따르면 지난 2월 보증금 1000만원 기준 서울 신축 빌라 원룸의 평균 월세는 101.5만원이다.
또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 경제만랩이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살펴본 결과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빌라 전·월세 거래량은 총 2만1146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전세 거래량은 9268건, 월세 거래량은 1만1878건으로 나타났다.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56.2%로, 국토교통부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1월 기준) 가장 높은 수치다. 전국 빌라 1월 월세 거래 비중은 ▲2021년 34.4% ▲2022년 42.8% ▲2023년 53.2%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3억의 전셋집이어도 2000만~3000만원의 자본으로 대출을 끼고 2~3%대 이율로 50만원 안팎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이 요새는 월세로 105만원에도 나가요. 안전하다고 생각해 월세를 찾지만 다달이 부담해야 하는 가격이 2배 증가한거죠"라고 설명했다.
이에 빌라 시세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공시가가 아니라 감정가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량한 임대인을 구제할 수 있는 방편을 만드는 한편 지금처럼 불안한 전세시장이 아니라 적은 자본으로 거주하면서 자가 구입까지 연결될 수 있는 상생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공시지가는 시세가 반영되지 않는다. 조세를 걷을 목적 아니냐"라며 "실제 시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시세를 반영할 수 있게끔 감정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오히려 전세보증가입 범위가 늘고 세입자들도 안전한 전세에 입주해 주거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주택 마련 부담으로 결혼과 출산기피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공시지가를 급작스레 내렸던 것을 현실화해야 한다. 보증보험 가입 비율을 필요하다면 내려야겠지만 급작스럽게 많은 한도로 하향하는 것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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