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박세아 기자] “말도 안되죠. 보증이 무효라니, 보증 믿고 비싼 전셋집 계약하는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난해 부산에서 있었던 180억원 규모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법정 다툼을 피할 수 없게 됐다.
HUG의 보증보험을 믿고 전세 계약을 했던 피해자들은 보험 이행을 하지 않은 HUG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최근 제기했다. HUG 측은 약관 상 사기나 허위로 보증을 신청했을 경우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피해자들은 모든 책임을 HUG가 세입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세금 피해를 입고도 피해금을 돌려받을 길이 사라진 세입자들은 HUG가 보증료만 챙기고 보증 의무는 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HUG와 피해자들 간 소송은 기일도 잡히지 않은 상태로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년이 소요될 수 있어 피해자들의 고통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 왜 일어났을까?
HUG는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 보험'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았을 때, HUG가 이 보험을 통해 세입자들에게 돈을 반환한다. 이후 HUG는 구상권 청구를 통해 전세금을 세입자들 대신 직접 반환받는다. 이마저도 안되면 경매 실행을 통해 채권자의 입장에서 매각 대금을 배당받는 방식으로 전세금을 회수한다.
하지만 이미 문제가 생겨서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한 집주인들이 HUG에 직접 전세금을 반환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 해당 물건이 경매 절차에 들어간다고 해도 이미 소액임차인이나 최선순위전세권자 등보다 권리관계가 앞서는 국세나 지방세, 체불임금 등이 존재할 수 있다. 복잡한 채권관계로 인해 전액 회수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물론 HUG는 이와 같은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나름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임대 사업자들에게 전세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된 것은 2020년 8월 민간임대주택법이 개정되면서다. 당시 보증보험 가입 조건은 주택에 걸린 전세금과 채권 금액의 합이 주택 가격보다 낮아야 했다. 이 조건 하에서라면 향후 집주인이 전세금 반환을 하지 못해 물건이 경매에 넘어가는 상황이 와도, HUG가 일부 배당받을 확률이 커진다.
하지만 일부 임대 사업자들은 이와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계약한 전세 금액보다 낮은 금액을 쓰는 방식으로 계약서를 위조했다. 이번 부산 전세사기도 당시 집주인이 무자본 갭투자를 통해 소위 '깡통전세' 190세대를 취득해 임대했고 이 과정에서 표준임대차계약서 위조가 있었다.
HUG는 이번 부산 전세사기 사건에서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보험 해지를 결정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보험 가입과 함께 입주한 세입자들은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도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막혔다.
■ 서류 검토 의무 충실하지 않았나..HUG, 비판 피할 수 있을까
이에 HUG가 검토 의무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HUG가 무상으로 보증을 서는 것도 아니고, 절차상 보증료를 받아 간다”며 “보증사에서 도장을 찍고 승인을 해주는 과정에서 더 면밀하게 서류를 검토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미회수금이 쌓이는 상황에서 정부로부터 4조원 현물까지 출자 받는 HUG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HUG가 최근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정부로부터 수혈받는 자금이 증가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HUG는 지난달 29일 최대주주인 국토교통부를 대상으로 4조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앞서 HUG는 올해 2월과 지난해 12월에도 국토부에게 각각 7000억원, 3839억원 현금도 출자 받은 바 있다. 이로써 HUG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자금이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약 5조원이 넘는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HUG의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4조9141억원에 달한다. 전세사기 여파로 HUG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돌려준 전세금 대위변제액이 급증하면서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세입자에게 대신 내준 대위변제금액은 3조5544억원에 달한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돌려받는 금액이지만, HUG 입장에서는 미회수금이 증가하는 것과 같다.
■방지위해 노력한다는 HUG, “아직은 부족”
HUG는 세입자들의 전세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증보험 가입 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HUG 관계자는 “부산의 경우 임대인에게 허위 서류를 제출받아 처리했던 것일 뿐, 이 상황에서 별다르게 취할 수 없는 방법이 없다”라며 “약관에 따라 사인 간 계약서 검증을 못 하게 돼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증가하는 전세사기 위험으로 인해 임대인으로부터 보험 가입 신청이 들어오면 내용이 맞나 확인하고 있다”라며 “또 임차인이 지방자치단체에 전입신고한 서류를 갖고 오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HUG가 조금 더 세밀한 방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애초에 보증보험 가입은 전입이 되고, 그 이후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HUG는 지금까지 전입신고 서류를 요구해왔다”며 “이것만 가지고는 별다른 전세사기 대책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또 “만에 하나 임대인이 전입신고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동안 보증보험 가입 절차를 이행했다 하더라도, 향후 대형사고가 터질 가능성을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었던 셈”이라며 “당연히 임차인과 임대인의 서류를 이중 확인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민간임대사업자 특별법상 정부에서 취득세 감면 등 혜택을 주는 대신 민간임대사업자가 보증보험을 필수로 가입해야 한다”라며 “정부가 임차인 보호를 하려고 하는 취지에 맞게 HUG도 더 구체적이고 신뢰 있는 보증보험 가입이 될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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