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박세아 기자] 전세사기가 전국 각지에서 속출하는 가운데 경매시장에 다른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이 쌓이기 시작했다.
1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시장 선행지표라 불리는 ‘경매’ 시장, 특히 최근 이 시장의 동향을 살펴보면 부동산 영끌족의 존재와 시장 양극화 현상을 체감할 수 있다.
경매는 사전적 의미로 물건을 팔고자 하는 사람이 물건을 사고자 하는 불특정인 중 가장 높은 가격으로 청약을 한 사람에게 물건을 매도하는 형태의 거래를 의미한다.
부동산 경매에는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상가, 선박, 토지, 임야 등 다양한 물건이 존재한다. 물론 매도인이 원해서 물건을 경매에 내놓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 압도적 확률로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지급받지 못한 자신의 돈과 같은 채권을 회수할 목적으로 실시한다.
지난 1월 전국 법원에 들어온 신규 경매 신청은 1만건을 넘어섰다. 월별 통계로 10년 6개월 만 최대 건수다. 이와 같이 경매 신청 건수가 많아졌다는 것은 채무자에게 자신의 채권을 회수 받지 못한 상황에 놓인 채권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최근 왜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됐을까?
■ 부동산 경매에 물건이 쌓이는 이유는?
부동산 경매에 나오는 물건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개인과 개인 간 채권관계가 청산되지 못했거나 국세 미납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
이 가운데 최근 경매 물건에서 보여지는 가장 큰 특징은 영끌족과 갭투자족의 존재다.
먼저 ‘영끌족’은 가용 가능한 현금과 부동산이나 주식 등을 담보로 무리하게 대출을 시행해 부동산을 취득하곤 한다. 당연히 미래 부동산 가치가 현재의 채무를 상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다. 하지만 이후 금리인상 등으로 은행권에 대출 이자를 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힘들게 취득한 부동산은 임의경매에 들어간다.
무자본 ‘갭투자’족은 적은 돈으로 매매가와 맞먹는 전세자를 끼고 부동산을 매입한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이 강제경매를 통해 보증금을 회수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를 달군 빌라왕 사건 역시 무자본 갭투자자로 이로 인한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해 많은 물건이 경매에 나온 사례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 빌라왕의 주 무대였던 ‘화곡동’ 일대에서 올해 1월 진행한 경매 건수는 592건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또 다른 전세사기범의 무대였던 인천 미추홀구의 경매 건수도 지난달 433건으로 지난해 2월에 비해 약 두 배가 늘었다.
■ 많은 물량 나오는 경매시장, 양극화 된 부동산 시장의 거울
이와 같은 이유들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경매시장이지만, 낙찰 상황이 지역별로 양극화돼 있는 것도 주목해 볼 만하다. 서울과 서울 외곽지역, 서울과 경기, 경기와 또 다른 지방 도시 간 국내 부동산 시장 양극화 문제가 그대로 경매 시장에 투영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매시장에서 인기있는 물건은 정해져있다. 경매 매수자 입장에서 투자 가치가 큰, 다르게 말해서 차익을 크게 남길 수 있는 물건들이다. 실제 경매에 참가하는 인원 중 실거주를 목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부동산 시장에서 인기 지역으로 꼽히는 곳의 물건이 경매 시장에서도 인기가 많다. 주변 시세에 따라 감정 물건을 보고 입찰가를 쓰고 손익 계산을 하기 때문에 인기 지역의 낙찰가는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지방 빌라나 아파트 물건보다 이왕이면 서울지역 아파트의 낙찰률이 더 크다. 또 서울 지역에서도 외곽보다는 중심부가 인기가 많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이 발표한 ‘2월 경매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경매 진행건수는 218건, 이 중 76건이 낙찰됐다. 낙찰률은 1월에 비해 2.8%포인트 하락했지만, 낙찰가율은 1.0%포인트 올렸다. 낙찰가율은 애초 법원의 부동산 감정가 대비 실제 낙찰가 비율이다. 낙찰가율이 높다는 것은 물건의 평가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재건축 기대감이 높은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아파트와 강남3구, 용산구 등 주요 입지 내 아파트가 낙찰가율 증가를 이끌었다. 반면 서울 외곽 지역 물건이나, 지방 물건은 감정가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게 낙찰을 받는 건수도 많다. 인천 아파트 낙찰가율은 1월보다 4.7%포인트 하락한 79.5%를 기록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부동산 시장이 주식처럼 기민하게 반응하는 시장은 아니지만, 저수지 이론처럼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외곽부터 하락하고 중심지는 나중에 반응하면서 서울과 지방, 또 수도권과 외곽 지역의 온도차가 극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매 시장의 경우에도 상승장에서는 서울과 지역 모두 고루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에 서울 지역 규제가 많으면 지방에 투자하는 등 모습이 보이겠지만, 하락장에서는 확실하지 않으면 입찰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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