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풍금부터 고품질 헤드폰까지..135년에 걸친 야마하의 혁신 '대장정'

이상훈 기자 승인 2022.06.22 17:05 | 최종 수정 2022.06.22 18:11 의견 0

[한국정경신문=이상훈 기자] 1887년 창립돼 어느덧 135년이라는 역사를 지니게 된 야마하(YAMAHA). 본래 야마하는 피아노와 오르간을 제작하며 창립됐으나 이제는 바이크, 골프 클럽을 비롯해 오디오 기기, 반도체, 스포츠 용품 및 자동차 부품까지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야마하는 전통적인 악기 제조사이며 오디오 제조사다. 그 이유는 야마하의 로고에서 알 수 있는데, 야마하의 로고는 소리굽쇠 3개가 정삼각형으로 균형 있게 겹쳐진 모양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소리굽쇠를 리드 오르간(Reed Organ, 풍금) 튜닝 도구로 사용했는데 그것이 야마하의 로고로 사용되며 현재에 이른 것이다. 때문에 야마하가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고 야마하 바이크에도 같은 로고가 새겨져 있지만 여전히 야마하의 뿌리와 중심은 악기와 오디오에 있음을 알 수 있다.

■ 리드 오르간에서 출발해 1세기를 넘긴 야마하

3개의 소리굽쇠로 만든 야마하의 로고. 야마하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자료=야마하뮤직코리아]

야마하의 창업자인 야마하 도라쿠스는 어린 시절부터 서양 과학기술에 흥미를 느꼈다. 도라쿠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오사카에는 서양의 시계가 막 보급됐는데 알아서 척척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에 흥미를 갖게 된 도라쿠스는 시계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러한 기술적 노하우를 살려 하마마쓰에 있는 병원에서 의료기기를 수리하는 일을 했다.

다양한 기기를 수리해 본 도라쿠스는 우연히 오르간을 수리할 기회가 생겼는데 이 때 도라쿠스는 악기 제작이 비즈니스로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오르간 내부를 분해, 모사하며 직접 만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도라쿠스가 직접 만든 오르간은 당시 일본의 음악취조소(현 도쿄예술대학)로 부터 혹평을 당했다. 이에 자극 받은 도라쿠스는 음악의 이론과 조율에 대해 철저히 공부하기 시작했고 4개월간 피나는 노력 끝에 새로이 오르간을 완성했다. 이때가 1887년이고 이듬해 도라쿠스는 회사 명을 '야마하 풍금 제조소'로 변경했다.

■ 남들보다 앞서 음원 연구소 설립, 본격 음향 회사로 발돋움

야마하 로고의 변천사. 상당히 많은 변경이 있었지만 세 개의 소리굽쇠는 여전하다. [자료=야마하뮤직코리아]

야마하의 로고는 도라쿠스가 소리를 튜닝하면서 쥐고 있었던 소리굽쇠를 공부하다 구상하게 됐다고 전해진다. 1898년에는 '소리굽쇠를 물고 있는 봉황' 문양을 자사 오르간 최고급품에 사용했다. 이후 봉황을 빼고 세 개의 소리굽쇠를 사용한 것은 1927년부터. 세 개의 소리굽쇠는 각각 '기술', '제조', '판매'를 상징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고루 합쳐져야만 비로소 온전한 악기가 만들어진다는 신념을 나타냈다. 악기로서의 세 개의 소리굽쇠는 또 '멜로디', '하모니', '리듬'을 각각 의미한다. 이들 세 가지는 음악의 기본 요소이니 야마하가 뿌리 깊숙이 음악과 관련된 회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야마하가 악기 전문 제조사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은 1900년 업라이트 피아노 생산을 개시하면서 부터다. 이윽고 1902년에는 그랜드 피아노를 제조했고 1930년에는 세계 최초로 음원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야마하는 1942년 어쿠스틱 기타 생산을 시작했으며 1966년에는 전자기타 생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6년, 야마하는 디지털 피아노 생산을 시작했다. 야마하는 제품 개발 연구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는데, 그 결과 다른 악기 제조사들보다 빨리 디지털 악기를 만들 수 있었고 이것이 하이파이 오디오 시장을 개척하는 데 단초가 되었다.

■ 하이파이라는 용어를 보급시킨 야마하의 오디오 시스템

야마하의 신시사이저. [자료=야마하뮤직코리아]

야마하는 단순히 악기만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악기들을 통해 연주되는 재생음을 듣는 장치,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특히 1955년부터 1965년까지의 10년간은 야마하에서 다양한 턴테이블과 FM/AM 라디오 튜너, 인티그레이티드 앰프, 파워 앰프, 프리앰프, 그리고 스피커 등이 잇달아 출시된 시기다. 게다가 각종 공연용 음악 장비와 전문가를 위한 녹음장비 제조, 콘서트 홀을 설계하면서 얻은 노하우들이 야마하의 오디오 산업에 더해졌고 그 결과 하이파이와 AV 시스템 분야에서도 한 발 앞선 제품들을 출시할 수 있게 되었다.

1967년에는 내추럴 사운드 스피커 시리즈를 선보이며 스피커 시장에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특히 NS-20 모니터 스피커는 뮤지션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이후 NS690, NS1000M 같은 히트작을 출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뮤지션들에게 야마하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킨 모니터 스피커, NS-20. [자료=야마하뮤직코리아]

이후 야마하는 모든 단계에 FET(Field Effect Transistor)를 사용한 파워 앰프 B-1, 밀라노 국제 음악 및 하이파이 쇼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C-2 컨트롤 앰프를 출시했고 크기를 줄이고 성능을 대폭 높인 NS-10M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를 출시하며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의 명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밀라노 국제 음악 및 하이파이 쇼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C-2 컨트롤 앰프. [자료=야마하뮤직코리아]

1980년대에는 야마하의 개성이 돋보이는 제품들이 다수 출시됐다. 그 중 가장 이색적인 제품은 B-6 파워 앰프. X 전원과 X 앰프가 장착된 이 제품은 외관이 일반적인 정사각형이 아닌 피라미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DSP를 지원하는 CX-10000 프리앰프. 무게 25kg에 출시 당시 가격은 80만엔이었다. [자료=야마하뮤직코리아]

또한 1983년에는 야마하 최초의 CD 플레이어인 CD-1을 선보였고 야마하 창립 100주년이 되는 1987년에는 RCA 단자와 디지털 동축 출력을 지원하는 CD 플레이어 CDX-10000, 야마하의 DSP를 지원하고 디지털 이퀄라이저를 갖춘 CX-10000 프리앰프, 무려 43kg에 달하며 출시 당시 가격이 80만 엔이나 했던 MX-10000 파워 앰프 등은 야마하의 전성기를 일궈놓은 제품들이 출시되었다.

■ 시네마 DSP 모드로 전세계 AV 시장 석권

하이파이 시장에서 야마하가 거둔 성공은 AV 시장에서도 이어졌다. 야마하는 전자악기를 생산하며 디지털 사운드 처리 기술에 대해 독자적인 노하우를 보유했는데 소리가 확산되며 형성되는 반사음과 소리의 이동속도 조절, 그리고 잔향감을 통해 ‘음장(Sound-Field)’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야마하의 시네마 DSP(Digital Sound-Field Processor)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콘서트 홀, 교회, 재즈 카페 등에서 공연하며 얻은 음향 샘플을 추가함으로써 어떠한 공간에서도 세계적인 공연장의 사운드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이후 시네마 DSP는 멀티채널 서라운드 사운드를 중요시 하는 AV 리시버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했으며 여러 경쟁사에서도 그와 유사한 DSP를 앞다퉈 개발하도록 자극했다.

11.2채널 구성에 3차원 시네마 DSP HD3를 탑재한 야마하의 플래그십 AV 리시버.
종합 최대 출력이 1810W에 달하며 63종류의 서라운드 프로그램이 탑재됐다. [자료=야마하뮤직코리아]

야마하는 1992년에 발표한 AVX-2000DSP, 1993년에 발표한 AVX-2200DSP 같은 돌비 프로로직 앰프를 통해 AV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멀티채널 서라운드 사운드를 재생하는 최신 AV 리시버에 야마하만의 넓이, 높이, 잔향감이 더해진 사운드는 타사 제품이 쉽사리 따라오기 힘든 매력이 있었다. 이후 야마하는 DTS-ES와 돌비 디지털 EX를 지원하고 12개의 시네마 DSP를 지원한 DSP-AX1, 시네마 DSP 3를 탑재하고 세계 최초로 HD 오디오를 지원한 DSP-Z11 등을 출시하며 AV 리시버 시장에서의 위치를 공고히 해나갔다.

야마하 AV 리시버 최상위 모델인 'RX-A8A'. [자료=야마하뮤직코리아]

지난해에는 야마하 AV 라인업인 아벤타지(AVENTAGE) 시리즈 최상위 모델 RX-A8A를 포함한 신제품 3종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한층 생동감 있는 사운드 다이내믹스와 공간을 묘사하는 사운드 이미지를 재생할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스튜디오 수준의 HD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돌비 애트모스'와 'DTS: X 디코딩', 영화관 음향 효과를 극대화하는 '시네마 DSP HD3' 등 첨단 기술을 대거 적용했다.

■ AV에서 데스크톱 오디오로 변화한 야마하

야마하가 AV 시장에서 눈부신 성장을 거두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 세계 경제가 악화되자 AV 시장도 더 이상 확대되지 않게 되었다. 당시 야마하는 YPAO(Yamaha Parametric Acoustic Optimizer, 자동음장설정기능)를 새롭게 개발하고 DVD 플레이어와 DLP 영상 프로젝터도 출시하는 등 AV 사업을 다각화했으나 AV 시장이 침체일로에 빠지자 프로젝터 개발을 접는 등 사업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야마하가 출시한 DLP 프로젝터 DPX-1000. 출시 당시 상당한 완성도로 주목
받았으나 DPX-1300 이후 더 이상 고사양 프로젝터를 출시하지 않았다. [자료=야마하뮤직코리아]

대신 야마하는 소비자들이 값비싸고 부피가 크며 설치가 어려운 멀티채널 서라운드 시스템을 원하기보다 설치가 간편하고 PDP와 LCD TV 같은 평판형 스피커에 어울리는 심플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원한다는 점을 간파헤 하나의 사운드로 서라운드 사운드를 재현하는 사운드 바(Sound Bar)를 선보여 대 히트를 거뒀다. 그리고 한동안 신제품 출시가 뜸했던 하이파이 시장에 CD-S1000/S2000 SACD 플레이어와 A-S1000/S2000 인티앰프를, 그리고 컨슈머 대상으로는 호화 사양의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소아보(Soavo) 시리즈를 출시하며 하이파이 시장에서도 야마하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 느릴 것 같은 오디오 시장도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와이파이 같은 기술이 보급됨에 따라 더욱 가파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거대한 멀티채널 오디오 시스템을 두기를 원치 않는다. 하나의 스피커로 간편하게 무선으로 연결해 스트리밍으로 즐기기를 원한다. 게다가 기기는 예쁘고 실내 인테리어와도 조화릴 이뤄야 한다.

우측 선반 위에 놓인 윈통형 스피커가 야마하의 데스크탑 오디오 중 하나인 WX-051다. 이 제품은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재생 뿐 아니라 자체 기술인 '뮤직캐스트'를 사용해 멀티룸 스트리밍부터 아마존 알렉사/구글 어시스턴트 등을 지원한다. [자료=야마하뮤직코리아]

이에 야마하는 가정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작고 예쁜, 그러면서 음질과 편의성까지 두루 갖춘 '데스크탑 오디오(Desktop Audio)'를 연달아 출시했다. 이 제품들은 블루투스 연결은 물론이고, 어떤 제품은 조명 기능까지 갖춰 인테리어 소품으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야마하의 고급 이어폰 'TW-E5B'. [자료=야마하뮤직코리아]
야마하의 음향 기술을 집대성한 헤드폰 'YH-L700A'. [자료=야마하뮤직코리아]

야마하는 사운드바의 크기와 가격대를 다양화하며 1위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바일 기기에도 적극 투자해 능동형 소음감소(Active Noise Cancellation) 기능과 공간음향(3D Sound Field), 착용자의 귀 형태에 꼭 맞도록 인이어 마이크를 통해 귀와 헤드폰 사이의 밀폐 정도와 누출을 측정해 조정해 주는 리스닝 옵티마이저(Listening Optimizer) 등 헤드폰 전문업체들보다 더욱 뛰어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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