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당정이 추진하던 금융감독 체제 개편이 결국 백지화됐다.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라는 근본 취지는 금융감독원 자체 혁신에 맡겨지게 됐다. 이찬진 금감원장 주도의 소비자 보호 중심 감독 패러다임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열린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 및 금융감독원 공공기관 지정 반대 집회에서 금감원 노동조합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정부와 여당은 지난 9월 내놓은 금융감독위원회 신설과 금융감독원·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 등을 골자로 한 금융감독체제 개편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체계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이찬진 금감원장의 투톱 체제로 유지되고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라는 숙제는 고스란히 금감원의 자체 혁신 과제로 남게 됐다.

이로써 약 4개월간 금융권을 뒤흔든 조직개편 논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초 정부가 금소원 신설을 추진한 배경에는 금감원이 금융사의 건전성 감독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금융소비자 보호에는 소홀했다는 문제의식이 짙게 깔려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 안정에만 초점을 맞추는 동안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같은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감독 기능과 소비자 보호 기능을 분리해 금소원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것이 개편의 핵심 취지였다.

다만 중복 규제·감독 부담과 기관 간 권한 충돌, 효율성 저하 등 부작용 우려도 제기됐다.

그간 금소원 분리에 반대해온 금감원 직원들은 개편안 백지화 소식에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금융소비자 보호 등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자성론과 내부 쇄신 의지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금감원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내부 입장문을 통해 “금소원 신설이 보류된 것은 각종 사회적 비용과 당면한 대내외 경제적 불확실성 등을 감안한 결과”라며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한 업무 혁신 의지를 표명한 금감원 직원들의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내부적으로 소비자보호 강화 기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찬진 원장의 조직 쇄신 추진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이 원장은 지난 8월 취임 직후부터 소비자보호 최우선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그의 최우선 지시로 출범한 ‘사전예방적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태스크포스(TF)’는 이번 개편 무산을 계기로 금감원 혁신의 핵심 기구로 부상할 전망이다.

금감원 비대위도 “소비자 보호를 중심으로 큰 판 짜기를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최근 진행 중인 사전예방적 소비자보호 TF의 속도감 있는 추진을 건의할 것”이라고 말하며 힘을 보탰다.

이 원장은 기존의 사후 처벌 중심에서 사전예방적 감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지난 9월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관행을 내놓은 바 있다. 소비자보호 내부통제위원회 운영, CCO(소비자보호 임원) 독립성·전문성 확보, 성과보상 체계(KPI) 개편 등이 핵심이다.

금소원 분리가 무산된 만큼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의 역할과 권한도 대폭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소원 분리로 달성하려던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를 내부 조직 강화로 대체하는 방안이다.

금감원은 다음 주 초 자체적인 조직 혁신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 원장의 소비자 보호 중심 감독 철학이 조직 전반에 뿌리내리느냐가 향후 재개편 논의를 차단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