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대출금리에 은행이 붙이는 가산금리가 수술대에 오를 전망이다. 은행권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핑계로 가산금리를 올려 이자장사 수단으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정치권에서 제기되면서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6개 주요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 전날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과 6개 주요 은행장이 참석했다.
당초 업계에서는 이날 간담회에서 이 대표가 은행권에 가산금리 인하를 비롯한 추가적인 상생금융 방안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간 이 대표가 민생경제 안정을 위해 은행권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도움이 절실할 텐데 원래 금융기관의 역할 자체가 기본적으로 지원 업무”라면서 “여러 가지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 방안들도 있는데 충실하게 잘 이행해 주고 서민들 소상공인 여러분들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만 이 대표는 “일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뭘 강요해서 얻어오거나 뭔가를 강제하기 위한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지나친 대권 행보라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발언이다.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도 가산금리 인하 등 직접적인 요구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가산금리가 주요 의제로 다뤄지진 않았지만 은행권에서는 가산금리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가 가계·소상공인에 대한 금융 지원 확대를 직접 요구했는데 결국 금리를 낮춰 서민들 부채 부담을 줄여달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은 현 대출금리 산정 체계가 은행들에 과도하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 10인 지닌달 19일 은행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가산금리 세부 항목 공시 등 대출 금리 산정 체계의 합리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박 의원 등 10인은 “공시항목이 기준금리와 가산금리 및 가감조정금리만으로 구분돼 차주는 가산금리를 결정하는 세부항목 등 구체적인 대출금리 산정 체계에 대해 알 수 없는 비대칭 정보 상황에 있다”며 “주요 은행들은 대출수요를 억제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가산금리를 인상하는 한편 반대의 경우에는 가산금리를 인하하지 않고 대출한도만 조정하는 방식으로 목표이익률을 높게 설정해 대출금리 인상만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산금리는 은행채나 코픽스 같은 시장 조달금리에 은행이 임의로 덧붙이는 금리다. 기준금리 등에 영향을 받는 다른 지표와 달리 은행이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수단이다. 지난해 한국은행의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들이 높은 가계대출 금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가산금리 덕분이었다.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이전인 지난해 6월 5대 시중은행의 평균 가계대출 금리는 4.28%였다. 기준금리 평균 3.69%에 순가산금리(가산금리와 가감조정금리 차) 0.59%가 더해진 값이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두 차례 인하된 지난해 12월 5대 시중은행의 평균 가계대출 금리는 4.90%로 오히려 더 높아졌다. 평균 기준금리는 3.27%로 낮아졌지만 순가산금리가 1.62%로 올랐기 때문이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NH농협은행의 순가산금리가 0.33%에서 1.49%로 가장 큰 폭 뛰었고 이어 신한은행(0.78%→1.87%), 우리은행(0.81%→1.81%), 하나은행(0.49%→1.48%), KB국민은행(0.54%→1.50%) 순으로 가산금리가 올랐다.
문제는 이렇게 오른 가산금리가 공정하게 산정됐는지 소비자 입장에서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가산금리를 조정했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산정내역 등은 밝히지 않았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순가산금리는 1.48~1.87% 선에서 형성돼 큰 차이가 없지만 가산금리와 가감조정금리는 은행별로 최대 1.02%포인트까지 격차가 난다. 가산금리가 높으면 가감조정금리도 높고 가산금리가 낮으면 가감조정금리도 낮은 식이다. 은행별로 산정 항목과 기준이 고무줄이라는 의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내부 원가 등을 처음부터 가감 조정 항목에서 뺄 건지 가산금리 항목에 반영할 것인지에 따라 은행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실질적으로 대고객이 적용받는 금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에 은행권은 지난 2023년 ‘대출금리 체계의 합리성 제고를 위한 모범규준’을 개정해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항만 개선된 은행권 자율규제라는 한계는 여전하다.
만약 이번 은행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은행이 기대이익 확보를 위해 설정하는 수익률 ▲출연료 및 세금 등 은행이 법적으로 부담하는 비용 ▲대출관리, 자금조달 비용 등 원가배분방식을 적용해 산정하는 비율 ▲그 밖에 가산금리 산정하는 데 필요한 사항으로 대통령이 정하는 사항 등을 공시해야 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 산출하는 원가도 어떻게 보면 영업 비밀일 수 이는데 이를 모두 다 공개하게 되면 은행간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라면서 “고객들이 각각의 상황에 맞춰서 좀 더 나은 혜택을 제공하는 은행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인데 모든 것을 일률적으로 맞추겠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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