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은행권 횡령 사고, ‘인간 본성’ 인정해야 막는다
윤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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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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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잠정 561억7818만원. BNK경남은행에서 약 15년간 부동산 대출 업무를 담당했던 부장급 직원이 회사 몰래 빼돌린 횡령금 액수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인 우리은행에서 7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해 큰 충격을 안겼는데 이번에는 지방은행에서 사고가 났다. 수백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횡령금, 부동산 PF대출이라는 특수 업무, 10년이 넘는 장기근속, 가족 계좌와 페이퍼 컴퍼니 동원 등 여러모로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와 판박이다.
경남은행 투자금융부서에 검사반을 투입해 사고 경위를 파악한 금융감독원은 “약 15년간 동일 업무를 담당하면서 가족 명의 계좌로 대출 자금을 임의 이체하거나 대출서류를 위조하는 등 전형적인 횡령 수법을 동원했다”며 “은행의 특정 부서 장기근무자에 대한 순환인사 원칙 배제, 고위험업무에 대한 직무 미분리, 거액 입출금 등 중요 사항 점검 미흡 등 기본적인 내부통제가 작동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 말인즉슨 이번 횡령 사고는 특이한 케이스라기보다는 오히려 ‘전형적인’ 수법을 동원한 은행권의 ‘전형적인’ 횡령사고라는 뜻이다. 은행권에 유사한 횡령 사고가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는 경고로도 들린다.
횡령 사고에는 전형적인 패턴이 있다. 은행의 촘촘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뚫고 회사돈을 빼돌리려면 특정한 방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소속 A씨는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모회사의 출자전환주식과 매각 계약금을 빼돌리기 위해 직인 도용과 공·사문서 위조를 했고 가족 명의의 계좌를 이용했다.
부동산PF 업무를 담당했던 경남은행 직원 B씨도 수시 상환된 대출원리금을 빼돌리기 위해 대출서류를 위조하고 가족 명의 계좌로 이체하는 방법을 썼다.
장기근속도 횡령 사고의 주요 패턴 중 하나다. 특정 업무를 오래할 수록 권한은 집중되고 내부통제시스템의 허점도 잘 알게된다. 우리은행 A씨와 경남은행 B씨 모두 각각 기업구조조정과 부동산 대출 업무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이른바 ‘고인 물’이었다.
장기근무자에 대한 부서이동(3~5년)·직무순환(1~2년)과 명령 휴가 제도만 제대로 적용됐었어도 고인 물이 썩는 일을 방지할 수 있었다.
‘견물생심’이라고 좋은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횡령 사고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며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다.
마침 우리금융그룹의 장광익 부사장은 지난달 20일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설명하면서 “이 모든 문제는 인간의 본능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며 “새로 논의되는 내부 통제 시스템은 이러한 본능까지도 감지하고 잡아낼 수 있도록 제도·전산적 차원에서 접근해 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 발언은 마치 횡령 사고의 책임을 직원의 본성 문제로 돌리는 듯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분명 곱씹어 생각해볼 문제다. 횡령을 저지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일을 막을 수 있는 건 역시 시스템일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은행권 내부통제 혁신 방안으로 장기 근무자에 대한 인사 관리 기준 강화와 명령 휴가 대상자 확대, 자점감사 점검 의무화 등의 방안을 내놨다. 금감원은 경남은행 횡령 사고를 계기로 전 은행권을 상대로 내부통제 혁신 방안 이행 여부를 점검하기로 했다.
시중은행들도 이참에 내부통제 시스템을 점검하며 직원들의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심어주는 것도 횡령을 막을 수 있는 방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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