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짠돌이' K-조선

'조선 빅3'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수주실적 호조'
3년 일자리 확보 올해 일자리 늘릴 기회..저임금 노동만 찾는 풍토 바꿔야

이정화 기자 승인 2023.04.05 06:25 의견 0
산업부 이정화 기자

[한국정경신문=이정화 기자] 조선업 '슈퍼 사이클' 진입! '조선 빅3' 1분기 수주 100억달러 돌파!

조선업계에 낭보가 이어지고 있다. 불경기에도 '세계 1위' 경쟁력을 발휘했다. 일감 3년치 이상을 확보했다며 밝은 미래를 얘기한다.

일감은 곧 일자리다. 우리나라 조선업은 2016년 이후 오랜 불황의 터널을 지났다. 텅빈 도크를 뒤로하고 조선 근로자들은 자영업자로, 대리기사로 생업을 찾아 떠났다.

이제 그들이 다시 꽉 들어찬 도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잔치라고 할 만큼 수주가 호황을 이루는 지금 현장에서는 사람을 못 구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새로 지을 배는 많아지는데 왜 일자리는 늘지 않을까?

이유는 조선사의 '씀씀이'에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력을 끌어오려면 정부든 업체든 돈을 많이 쓰면 되는데 그게 안되니 조선업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데이터도 뒷받침한다. 조선·해양산업인적자원개발위원획(ISC)가 지난해 상반기 조사한 채용 부진 이유 중 '임금수준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답이 29.3% 였다. '구직자가 기피하는 직종'(31.5%)과 함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청년층이 조선업을 '외면 1순위'로 꼽는 이유도 위험한 작업 환경과 고된 노동에 걸맞은 충분한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업 평균 임금은 2000년대 초반까지 제조업보다 1.5배 높았지만 이제는 제조업 평균보다 낮다.

다단계 하청 구조도 임금 불만을 일으키는 요소다. 조선 분야 생산직 중 하청 근로자의 비율은 1990년 21%에서 현재 69%로 높아졌다. 이들은 한 해 동안 원청보다 90일 더 일하지만 돈은 원청의 60% 수준을 받는다.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내려가면 통장 상황은 더욱 열악해진다.

현장 노동자들은 업황이 좋아져도 저임금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떠난 동료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푸념한다.

이러한 고용감소는 중대형 조선사에서 더 두드러진다. 100인 미만 사업체에서는 고용이 증가하고 있지만 1000인 이상 사업체에서는 고용이 감소했다.

소위 '조선 빅3'인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도 인력채용에는 인색하다.

중대형 조선소 채용규모는 2015년말 20만명을 넘었다. 지난해 10월엔 9만5000명 수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채용을 줄인 명분은 조선업 물량감소였다.

최근 조선업 신조 물량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이제 일자리를 늘려야 할 때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조선업 생산직 필요 인력은 지난해 3분기 8239명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하반기 기준 조선업 종사자 미충원율도 34%에 달한다. 올해 3분기가 되면 1만2872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선사들은 외국인 근로자를 늘려 인력난을 해소하고자 한다. 저임금 기조를 지키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런 기조라면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구조도 고착화할 것이란 우려를 사고 있다.

결국 인력난을 해소하려면 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조선협회가 도장 분야 신입직원의 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9%는 저임금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고 답했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위험한 조선소 업무에 정당한 보상 없이는 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저임금과 고위험, 불안정한 일자리로 알려진 오늘날 조선업종은 청년들과 숙련공이 발길을 돌리는 시장이다. 국내 조선업이 적자 탈출을 넘어 정상화에 닿으려면 정부와 기업 모두 써야 할 돈은 써야 하지 않을까.

'K-조선' 앞에 붙은 '세계 1위 경쟁력'은 고된 일에 걸맞은 임금과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이 성사됐을 때 적합한 타이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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