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김재성주필] 미, 중 무역 전쟁이 문명전쟁으로 번지는가?
6월 1일 미국이 중국산 5745 종의 품목에 대해 관세를 25%로 올리고 중국이 미국 산 5140개 품목에 대해 관세 25%로 인상하는 관세장벽이 발효되는 날, 두 나라는 태평양 해상권을 놓고 양보 없는 설전을 주고받았다.
미국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1일 싱가포르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중국을 겨냥한 ‘펜타곤 인도 태평양 전략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다. 보고서는 “공산당 휘하의 중국은 법치에 기반 한 질서의 혜택을 만끽하면서도 그 가치의 원칙은 훼손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내 소수민족 탄압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며 중국의 성역인 공산당과 내정에 속하는 소수민족 탄압을 언급해 전선을 확대했다.
중국이 그냥 있을 리 없다. 2일 중국 국방부장 웨이펑허(魏鳳和)가 나섰다. “개별 대국(미국 지칭)이 여기저기 끼어들어 난장판을 만들고 있다. 중국은 싸우기를 원치 않지만 싸움을 두려워하진 않는다. 협상하자고 하면 대문을 열어 놓겠지만 싸우자고 하면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응대했다.
이날 웨이펑허 국방부장은 이례적으로 군복을 입은 채 단상에 올랐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듯 중국은 동남수역에서 6월 2일 오전 6시 30분에서 오후 6시 30분까지, 6월 4일 오전 6시 30분에서 12시 30분까지 군사훈련을 위한 항해 금지를 선포했다.
미, 중 전쟁의 타깃은 중국의 ‘화웨이’다. 미국이 모든 우방국들에게 화웨이와 부품조립이나 제품구매 등 거래중단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5G세대 기술이 가져올 무서운 파급력 때문이다. 미국은 ‘화웨이’가 5세대 기술을 완성하고 나면 그 기술이 산업진흥이 아니라 중국 인민의 24시간 감시와 세계 도처의 산업스파이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이에 대해 심증을 갖고 있다. 지난해 10월 20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허드슨 연구소 연설이 심증 내용이다. 펜스 부통령은 이 연설에서 중국을 무역질서 위반, 지적재산권 절도, 종교와 소수민족 탄압, 환율조작 국가로 지목했다. 또 “중국이 WTO에 합류하면 경제 뿐 아니라 정치적 자유도 확대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거꾸로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그린 통제국가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사회신용평가'라는 제도를 만들어 점수가 낮은 사람은 단 한발 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고도 했다.
미국은 왜 중국의 체제를 건드리면서 전선을 확대하는가? 무역전쟁의 기선을 잡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거꾸로 중국의 체제에 시비를 걸기 위해 무역전쟁을 시작했다는 시각도 있다.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기축통화 국이 무역적자 때문에 인심 잃어가며 세계를 시끄럽게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은 글로벌 거버넌스 차원에서 다른 국가들과 협력할 것이며 각 국가의 주권을 존중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체제에 시비를 거는 것은 그 체제가 국제사회의 시장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명경쟁이라면 중국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중국인들은 내심 “시장주의가 중국을 구했지만 이제 중국이 자본주의를 구할 것”이라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의 역사 속에는 서양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융합보다 더 다양한 유, 불, 선, 제자백가의 사상이 녹아있으며 민주주의 원본인 인본주의, 복지사회의 모델인 대동사회의 경험이 온축돼 있는 중국에서 빈익빈을 가속화 시키는 신자유주의 대안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6월 말 일본 오사까(大阪)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때 싫든 좋든 만나게 돼있는 트럼프-시진핑 회담에서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이 싸움은 오래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 바람에 힘들어지는 것은 한국과 주변국들이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는 안보 동맹국이자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종주국이며 중국은 중요한 소비시장이자 같은 문화 DNA를 공유하고 있는 이웃이다. 시큰둥하던 시진핑(習近平)이 G20 정상회의 전후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속내는 빤한 노릇이니 한국의 고민은 점점 깊어만 간다.
어느 쪽이 이길까? 저울질 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춘추시대 진(晉) 초(楚)사이에 낀 정(鄭)나라가 자산(子産)이라는 현자 덕에 예(禮)를 바탕으로 장수했듯이 그때그때 국제교역 질서와 시장규칙에 따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범범하지만 그것이 답이다.
다만 불가피하게 한 쪽을 선택하더라도 반대편에 배신감을 주지 않는 외교적 노력과 배려가 필요하다. 사드배치 결정과 중국의 보복은 좋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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