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신한금융그룹이 제4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경쟁에서 손을 떼고 계열사인 제주은행을 활용한 ERP(전사적자원관리)뱅킹 사업 육성에 나선다. 빠르면 내년 초 제4 인뱅 출범보다 먼저 관련 상품·서비스를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은 지난 25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디지털 제주’ 신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지방은행의 구조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디지털 채널 기반 영업을 확대하고 디지털 강점을 가진 파트너와의 협력으로 상품, 채널, 프로세스 등 금융업 전 부문에서의 혁신을 추진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그간 신한은행 중심으로 추진되던 인뱅 설립 사업 전략을 지방은행 육성으로 전환한 결정이다.

신한금융그룹 본사 (자료=신한금융그룹)

당초 신한은행은 국내 1위 ERP 업체 더존비즈온과 손잡고 제4인뱅 설립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지난달 제4인뱅 예비인가 신청 일주일을 남기고 더존비즈온이 돌연 불참을 선언했다. 신규 사업 추진보다 기존 비즈니스 솔루션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 플랫폼 구축에 주력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당시 더존비즈온 컨소시엄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신한은행은 말을 아꼈었다. 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더존비즈온과 새로운 방식의 협력 모델을 찾았고 제주은행의 ERP뱅킹 추진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신한금융 CSO 고석한 부문장은 “중소기업·소호 영역에서 회사의 실질적인 신용상태를 판단해서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가 제4인뱅 설립에 있어서 핵심이었고 신한은행 중심으로 설립을 추진했던 것은 맞다”면서도 “더존비즈온과 사업 모델에 대한 이해관계자 조율의 문제, 최소 자본금과 인력의 규모, 투입 기간 등을 고려해 ERP뱅킹 추진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ERP뱅킹은 ERP과 뱅킹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통합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임베디드 금융(비금융 플랫폼에 금융기능을 탑재하는 것) 모델이다.

기존에는 기업이 ERP로 경영 데이터를 관리하고 금융거래는 별도의 은행 채널을 이용해야 했다. ERP뱅킹은 이 두 영역을 융합해 ERP에서 경영 데이터를 관리하면서 바로 금융상품 신청, 대출 실행, 자금관리 등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제주은행은 ERP에 누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금융상품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ERP뱅킹 추진 전략에는 인뱅 도전 당시 파트너사였던 더존비즈온의 역할이 크다. 앞서 더존비즈온은 제주은행의 지분 14.99%를 인수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를 통해 ERP뱅킹 추진의 재원, 자본 및 협력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더존비즈온 관계자는 “제주은행 지분 참여는 단순 투자를 넘어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선택”이라며 “제주은행의 디지털부문 사업을 함께 추진함으로써 디지털뱅킹의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ERP 뱅킹 추진으로 제주은행은 지역 기반 한계를 넘어 전국 단위의 기업금융 시장에 진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된다. 더존비즈온은 인뱅 설립에 비해 리스크와 비용은 줄이면서 데이터 기반 금융 플랫폼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신한금융은 제주은행의 지역 밀착 네트워크와 더존비즈온의 기술 인프라를 결합해 중소기업 금융 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신한금융은 하반기 중 신사업 추진 전담 조직을 구성해 시스템 구축에 나선다. 이르면 내년 초 중소기업 대상 상품·서비스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4인뱅은 오는 6월 예비인가 이후 또 다시 본인가, 출범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인가 여부 자체도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로서 신한금융의 ERP뱅킹이 먼저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고석한 부문장은 “중장기적으로 단기 기업 대출 영역에서 성과와 검증이 이뤄지면 기업에 근무하는 종업원 대상 서비스 등 사업 방향을 넓힐 생각”이라며 “그룹 차원에서 일종의 테스트베드(시험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