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깜깜이’된 우리은행장 승계 프로그램..조병규 행장 거취 난제
우리금융 자추위 가동 한 달 반 지났지만 깜깜무소식
롱리스트는 물론 조병규 행장 거취 여부도 결정 못해
지난해 공정·투명성 강조 ‘은행장 선 프로그램’ 도입 무색
조병규 행장 연임 의지 강력..“이사회서 결단 내릴 시점”
윤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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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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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지난해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공정·투명성을 강조하며 야심차게 도입한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이 도로 ‘깜깜이’ 선임으로 돌아갔다.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 가동 한 달 반이 지났지만 롱리스트(1차 후보군)는 물론 조병규 현 행장의 거취 여부도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 이사회는 지난 9월 27일 첫 자추위 개최 이후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당초 지난달 31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진행된 비공개 이사회 회동에서 롱리스트가 나온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아무런 내용도 발표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롱리스트 포함 여부로 조 행장의 거취를 판단할 수 있을 거로 봤지만 이마저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조 행장의 임기는 내달 31일까지로 4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다른 주요 금융지주도 은행장 등 주요 자회사의 대표 선임 절차에 들어갔다. 최고경영자(CEO) 임기만료 3개월 전에 경영승계절차를 개시하라는 금융당국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따른 조치다.
다른 금융지주도 후보군 명단과 평가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다. 모범관행을 반영해 경영승계 절차를 개선한 것과 별개로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금융은 입장이 다르다. 지난해 3월 임종룡 회장 취임과 동시에 자추위를 가동해 당일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과 1차 후보군 명단을 발표했다. 신기업문화 정립과 조직혁신을 강조한 임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1·2차 후보군을 조기에 확정하고 두 달 여간 총 4단계의 검증 절차 걸쳐 차기 행장을 뽑는 것이 임종룡식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이 핵심이었다.
우리금융은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 시행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회장, 은행장, 임원 등 경영진 선발을 위한 경영승계프로그램의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금융당국에서도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수립하면서 우리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을 모범 사례로 들며 참조하기도 했다.
우리금융도 퇴행에 가까운 이러한 상황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우리은행장 인선에 혼선이 빚어진 것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고로 현 경영진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다.
조 행장은 임기 내내 횡령사고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취임 직후 9000만원 규모의 횡령 사건이 발생했고 올 6월 대리급 직원이 약 1년간 35회에 걸쳐 허위 대출을 일으켜 약 177억7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여기에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고가 조 행장 책임론에 불을 지폈다. 이 일로 임 회장은 금융지주 회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국회 국정감사 증언대에 섰지만 조 행장은 어떤 책임 있는 행보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금융 자추위는 후보군 선정에 앞서 조 행장의 거취부터 정해야 한다. 이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조 행장 본인의 연임 의지가 강력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 시중은행장의 경우 ‘2+1’년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관례고 부당대출 등 금융사고를 제외하면 조 행장은 경영성과 측면에서 큰 문제가 없다. 우리은행은 3분기 누적 기준 전년 동기 대비 10.2% 증가한 2조524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연임에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지만 한편으로는 조 행장이 사태 수습의 책임을 마지막까지 져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임 회장이 국감장에서 거취를 묻는 질문에 “지금은 조직의 안정, 내부통제 강화에 신경 쓸 때”라고 답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업계에서는 우리금융 이사회가 조 행장의 거취부터 우선 결정해서 은행장 승계 프로그램의 정상적 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조병규 행장 본인의 연임 의지가 강력한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이사회에서 결단을 내려야할 시점이 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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