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총량 규제 대신 은행 자발적 대책 의존..전방위 대출 죄기 이어질라

은행권, 한도 축소 이어 유주택자 대출 취급 제한 초강수
당국 정책 방향에 협조..금리 인상 대신 자발적 조치 시행
총량 규제 안 한다지만..“은행이 눈치껏 관리하라는 것”
연말 갈수록 가계부채 관리 압박↑..또 셧다운 반복될라

윤성균 기자 승인 2024.09.04 11:08 의견 0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각종 규제책을 쏟아내고 있다. 금융당국은 과거 가계대출 총량관리제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지만 은행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 고강도 규제책을 내놓으면서 대출 시장이 ‘혹한기’로 치닫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NH농협은행과 카카오뱅크가 유주택자의 주택 구입 목적의 대출 취급을 한시적으로 중단한다. 기존의 주택담보대출 한도 축소나 거치기간 폐지와 같은 조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초강수를 뒀다.

2일 오후 서울의 한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의 모습 (자료=연합뉴스)

NH농협은행은 오는 6일부터 2주택 이상의 다주택자에 대해 수도권 주택 구입 목적의 자금 대출을 한시적으로 중단한다. 다주택자의 생활안정자금을 1억원으로 제한한다.

아울러 투기성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역시 한시적으로 중단할 계획이다. 지난 6월부터 중단한 모기지신용보험(MCI) 대면 주택담보대출은 비대면으로 확대하고 모기지신용보증(MCG) 취급은 한시적으로 중단한다.

은행권의 유주택자 대상 가계대출 제한 조치는 우리은행에서 시작됐다. 우리은행은 지난 1일 ‘실수요자 중심 가계부채 효율화 방안’을 수립하면서 유주택자에 대한 전세대출·주담대 제한 조치를 포함 시켰다. 앞서 지난달 26일 발표한 다주택자 생활안정자금목적 주담대 한도 제한, 전세대출 조건부 취급 제한 등 조치에 이은 두 번째 가계대출 억제책이다.

인터넷은행 중에서는 카카오뱅크가 가장 먼저 나섰다. 전날부터 주택구입자금 목적 주담대 대상자 조건을 기존 세대 합산 기준 ‘무주택 또는 1주택’ 세대에서 ‘무주택 세대’로 변경한 것이다. 만 34세 이하의 경우 최대 50년이던 주담대 만기도 30년으로 줄였다.

다른 시중은행에서는 아직 유주택자에 대한 가계대출 취급 제한 조치가 도입되지 않았지만 이는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어느 한 은행에서 대출 창구가 막히면 다른 은행으로 수요가 쏠리는 ‘풍선 효과’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지난달 말 주담대 한도 축소와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 제한 등 실수요자 중심의 가계대출 관리대책을 내놨고 신한은행도 선제적으로 유사한 제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그간 대출 금리 인상으로 대출 수요를 억제해 온 은행들이 유주택자와 갭투자 대상의 규제책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26일 은행연합회에서 은행장 간담회가 열린 직후다. 이날 은행연합회장과 은행장들은 금융당국의 정책방향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실수요와 무관한 갭 투자 등에 활용되지 않도록 각 은행 자율적으로 다양한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문제는 은행별로 자율적인 가계대출 억제책을 시행하면서 영업점 현장에서는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단지를 대상으로 은행들이 조건부 전제자금 대출 취급 제한을 두고 엇갈린 정책을 펴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KB국민·우리·NH농협은행은 일반 분양 주택을 비롯한 모든 주택에 대해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취급을 일괄 제한하기로 했다. 일반 분양자가 전세 세입자를 구하고 세입자가 받은 전세 대출로 잔금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단 얘기다.

반면 신한은행은 신규 분양 주택을 이번 정책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일반 분양자는 분양 계약서상 소유주로 등재돼 있기 때문에 나중에 잔금을 완납할 때 소유권이 변경된다고 볼 수 없다는 해석이 근거다. 하나은행은 아직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중단을 도입하지 않았다.

은행들이 저마다 다른 가계대출 억제책을 내놓으면서 대출 시장에는 혼란이 번지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은행별 자체적으로 수립한 가계대출 관리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최근 가계대출 관리는 지난 2017~2021년 가계대출 총량관리제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총량관리제하에서는 은행별로 연간 대출 증가 한도액을 업권별 현황이나 직전 연도 증가율 등을 고려한 뒤 할당해 관리했지만, 현재는 은행이 은행별 경영전략에 따라 자체 수립한 경영계획을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앞서 은행이 연초에 세운 경영계획 대비 가계대출 실적이 과도할 경우 페널티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결국 은행 입장에서는 금융당국의 감독 기조에 따라 특단의 가계대출 억제책을 자발적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가계대출 억제에 효과가 있었던 대책들을 순차적으로 도입하고 있다”이라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이 은행의 눈치 게임이 되면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앞서 대출 금리 인상으로 어느 정도 가계대출 억제 효과를 봤는데 추가로 은행의 자발적인 관리를 요구하는 상황”이라면서 “은행에만 가계대출 증가 책임을 묻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대출 옥죄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은행들이 연말 가계대출 총량 한도를 맞추기 위해 제한 조치의 강도를 더욱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2021년과 같은 가계대출 중단 사태마저 우려하고 있다. 당시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폭을 억제하기 위해 영업점별 대출 한도를 설정하거나 신규 가계대출을 취급을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저작권자 <지식과 문화가 있는 뉴스> ⓒ한국정경신문 | 상업적 용도로 무단 전제,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