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위해 대출 금리를 올려왔던 은행권이 만기와 한도를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간 대출 금리 인상을 묵인했던 금융당국에서 이자장사 비판이 나오자 부랴부랴 ‘새 답안지’를 내놓는 모양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전날 은행장 간담회를 열고 가계부채 관리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최근 가계대출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고 하반기에도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주택시장 동향 등을 고려할 때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되거나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에서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정책방향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실수요자 중심의 자금공급을 유지하되 실수요와 무관한 갭 투자 등 투기수요 및 부동산 가격 부양 수단 등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각 은행 자율적으로 다양한 조치들을 시행하기로 했다.
특히 대출 금리 등 가격 중심의 대응보다는 은행별로 차주의 실질적인 상환능력을 고려해 대출심사를 체계화하고 대출한도를 탄력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당장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전날 실수요자 중심의 가계부채 관리대책을 내놨다. 주택담보대출의 한도와 만기를 줄여 대출 취급 총량을 바짝 조이겠다는 것이다.
우선 다주택자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가 기존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줄어든다. 신규 주담대의 모기지보험(MCI·MCG) 가입도 제한된다. 모기지보험이 막히면 소액 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대출 한도가 축소되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국민은행은 수도권 소재 주담대 최장 대출 기간을 기존 40년(만 34살 이하는 5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한다. 만기가 줄면 대출 한도도 줄어든다. 1년(구입자금), 3년(생활자금)이던 주담대 거치기간도 폐지된다.
우리은행은 만기 축소나 거치기간 폐지 대신 대출 모집법인 한도를 월 2000억원 내외로 설정해 관리하기로 했다. 대출모집법인은 은행과 대출업무 위탁계약을 맺고 대출중개업을 수행하는 곳으로 한도가 소진되면 이들 법인을 통한 가계대출 취급이 한시적으로 중단된다.
아울러 우리은행은 주담대를 통한 갭투자를 방지하기 위해 전세대출의 소유권 이전, 신탁등기 말소 조건부 취급도 제한하기로 했다.
국민은행은 오는 29일부터, 우리은행은 내달 2일부터 가계부채 관리대책을 시행한다.
신한은행은 선제적으로 전날부터 모기지보험 가입을 제한하고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중단한 상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수요자 중심의 대출을 공급하기 위해 핀셋 규제 성격”이라면서 “앞서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 효과가 있었던 대책들을 하나씩 도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금리 인상이 아닌 한도와 만기 축소 카드를 꺼낸 것은 이자장사 논란과 관련이 있다.
앞서 은행권은 가계대출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주담대의 금리를 인상해 왔다. 가산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정해 금리를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이에 따라 이날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혼합·주기형(고정) 주담대 금리는 연 3.65~6.05%로 나타났다. 지난달 17일 연 2.86~5.63% 대비 하단은 0.79%포인트, 상단흔 0.42%포인트 올랐다. 일부 은행은 하단이 4% 초중반대를 기록하는 등 지난달 초와 비교해서는 1%포인트 넘게 상승한 모습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에서 은행권의 이러한 행보에 대한 비판 발언이 나오면서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 제동이 걸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5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가계대출이 예정된 스케줄 보다 많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은행들이 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은행 입장에서 금리를 올리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수요 누르는 측면이 있지만 당국이 원하는 방식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은행이 물량 관리나 적절한 미시 관리가 아니라 금액(금리)을 올리는 것 잘못”이라며 “개입이라는 말보다는 적절한 방식으로 은행과 소통해서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담대 관리를 위해 금리를 인상해 온 은행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금융 당국의 으름장에 추가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한 달 넘게 이어져온 금리 인상을 사실상 묵인해 놓고 이제 와서 은행 탓을 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급하게 내놓은 추가 대책이 금리 인상만큼의 총량 관리와 수요 억제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번 가계대출 관리 대책이 금리 인상만큼 직접적인 효과는 적을 수 있다”면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규제 정책 도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지식과 문화가 있는 뉴스> ⓒ한국정경신문 | 상업적 용도로 무단 전제,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