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5월 광주와 여성의 몸

-5월 광주 여성의 희생과 역할

김재성 주필 승인 2019.05.16 11:10 의견 8

[한국정경신문=김재성주필] “나는 이 재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변론하지 않겠다. 이 자리는 죄수와 심판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승리자와 패배자가 있을 뿐이다” 아들의 최후진술을 듣고 방청석의 어머니는 처음으로 아들의 참 모습을 깨닫는다. 어머니는 거리로 달려 나가 아들의 최후진술이 인쇄된 '삐라' 를 뿌린다.

 그 날 이후 어머니’는 파벨의 어머니가 아니라 착취와 억압과 싸우는 투사가 된다. 이 대목에서 막심 고리끼(Maxim Gorky)의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보인다. 그는 이 소설에서 여성을 누구의 어머니나 아내가 아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주체적 인간으로 그렸다.

1970년 11월 13일 전신을 붕대로 감싼 전태일은 어머니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숨진다. “엄마! 내 말 잘 들으세요. ·· 나 죽으면 노동자와 학생 모두 힘을 합쳐 힘을 보태 주세요.” 그 날로부터 작고할 때가지(2011년 9월) 꼬박 40년, 어머니는 아들이 보는 근로기준법을 빈 솥에 숨기던 보통 어머니에서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투사로 살았다.  

“청년들이 목숨을 바쳐 독재에 항거할 때마다 마치 내가 죄를 지은 듯 가슴이 미어진다”는 생전의 술회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투쟁은 독재의 폭력에 대한 본능적 저항이었던 것이다. 

서울 지하철 안국역은 구내 기둥을 독립운동가 1만5178명의 면면으로 꾸몄다. 그 중 310명은 여성.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의 아이디어다. 이처럼 우리 근·현대사에는 역사의 변혁을 이끈 여장부가 하늘의 별처럼 많은 데 우리는 ‘유관순 누나’ 밖에 모른다. 

5월의 광주가 그렇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숱한 희생과 숨은 헌신이 5월 광주의 행간을 메웠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마침 민주평화당 여성위원회(위원장 양미강)가 그 기억을 다시 불러냈다. 1980년 5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던 여성들이 증언하는 자리다. 양 위원장은 그 의미를 “39년 전 광주에서 여성의 역할과 그것이 2019년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자리”라고 했다. 

이 자리에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박춘림(‘그 날’ 발행인)씨의 18일부터 27일까지 목격담, 뉴욕 타임스 헨리 스톡스 기자가 “세익스피어의 비극에서도 이처럼 비장한 외침은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는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주인공 박영순 씨의 증언, 시민군 보급부장이었던 구성주(5.18민중항쟁동지회장)의 황금동 유흥업소 종업원들을 비롯한 여고생들의 헌혈 등 생생한 증언들이 쏟아졌다. 

여성은 자기 몸 안에 다른 생명을 기르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머리로 판단하는 것보다 몸으로 느끼는 데 민감하다. 생명과 관련된 것은 더욱 그렇다. 머리로 판단하기로 말하면 민주주의가 되거나 전두환 세상이 오거나 다를 게 없는 유흥업소 종업원들이 팔 걷고 나선 것은 총성, 유혈, 죽음 등 반생명에 대한 본능적 거부반응이다. 

80년 5월 광주의 방화와 약탈이 없는 질서유지는 1992년 4월 LA폭동과 대비되어 세계적으로 연구대상이다. 시장상인들을 중심으로 주부들의 식료품 등 생필품 나누기로부터 비롯된 ‘평화 광주’ 역시 여성들이 만들어 낸 기적에 속한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드네프로 강 언덕에는 전승기념탑이 있다. 고인이 된 신영복 교수의 글로 널리 알려진 이 전승기념탑은 언덕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여인상이라고 한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을 물리치고 세웠다는 이 탑에 대해 안내자는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은 전쟁에 나간 아들이 죽지 않고 돌아온다는 걸 의미한다.”고 설명한다지만 아마 전쟁의 주역은 남자들이지만 승리의 주역은 여자들이라는 뜻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