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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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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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올해 초 은행권을 흔들어 놓았던 상생금융 바람이 또 다시 일고 있다. 주요 은행 중에서 하나은행이 가장 먼저 총 10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신한금융그룹은 이보다 50억원 더 많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상생금융 패키지’를 내놨다.
KB금융과 우리금융, NH농협금융도 지난 3월 발표한 상생금융 보다 더욱 강력한 혜택을 담은 상생금융 지원책을 예고한 상태다. 이른바 ‘은행권 상생금융 시즌2’가 시작된 셈이다.
시발점이 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작심 발언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이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깊은 한숨을 쉬셨다”고 말했다.
이틀 뒤 이어진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는 “우리나라 은행은 갑질을 많이 한다”며 “그만큼 과점 상태인데 이것도 일종의 독과점”이라고도 했다.
이는 올해 초 윤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던 ‘은행은 공공재’, ‘돈 잔치’ 발언보다도 수위가 훨씬 센 것 처럼 들린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은행권 과점체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쏟아졌다. ‘10조원+α’ 규모의 은행권 상생금융안도 나왔다. 그럼에도 은행들이 이자수익에 역대급 실적을 내고 국민들은 이자부담에 허덕이는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니 시쳇말로 ‘괘씸죄’가 더해졌으리라.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지나치게 남탓하는 것 처럼 들린다. 고금리 과도한 이자부담이 어디 은행의 탓만이겠는가.
올해 윤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 발언 직후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을 꾸렸다. 은행권 경쟁 촉진 및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에 지난 7월 TF 운영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은행권 경쟁촉진을 위한 신규 플레이어 진입 허용, 대환대출 인프라 구축, 금리체계 개선, 비아지이익 확대 등 방안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중에서 효과를 본 정책은 많지 않다.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계획은 대구은행에서 증권계좌 부당 개설 사실이 적발되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TF 논의 초기 부상했던 특화전문은행(챌린저뱅크) 설립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 부실 사태로 흐지부지됐다.
금융사간 금리경쟁 촉진을 위한 온라인 대환대출인프라 도입은 가계대출 증가의 한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를 개선하겠다며 수개월 간 요란하게 TF를 운영한 것 치고는 성과가 미미하다. 지난 국감에서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금융위가 은행의 여러 가지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TF 운영했지만 은행권의 이자수익과 지배구조 측면에서 어떤 변화도 없다”며 “국민들한테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 아니냐”고 비판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시중은행들이 별다른 혁신 노력 없이 이자장사로 손쉽게 돈을 버는 것은 맞다. 매분기 실적 발표에서도 증명되는 사실이다. 대통령이나 당국이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자극적인 말 몇 마디로 상생금융을 압박하는 상황을 반복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은행권의 뿌리 깊은 과점 체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정책적인 고민과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상반기 미국발 유동성 위기로 흐지부지 됐지만 은행권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신규 플레이어가 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은행이 비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이런 정책적 고민이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지지한다는 윤 정부의 색깔과도 더 잘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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