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이상훈 기자] 이달 중 연임될 것으로 예상됐던 구현모 KT 대표의 연임에 차질이 생겼다. KT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과 여권 일부에서 연임에 반대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KT의 임원 인사가 늦어지게 됐고 결과적으로 KT의 올해 사업계획이 전부 늦춰지는 결과가 발생했다.
■ 구현모 대표 연임 임박하자 제동 거는 여권
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KT는 설 연휴 전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본래 지난해 말 구 대표의 연임이 확정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KT 대표이사 후보심사위원회에서 구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에 단독 후보로 추천한데다 이사회에서 연임에 대해 적격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구 대표의 연임에 대한 잡음이 나오자 구 대표가 다른 후보와의 경선 방식을 요청했고, 외부 전문기관 추천 후보와 KT 그룹 부사장급 이상의 내부 후보자를 놓고 심사를 벌였다. 결과적으로 구 대표가 또 다시 경선에서 앞서 단독 후보로 추천됐지만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소유분산기업에서 발생하는 지배구조 문제 개선을 위해 최고경영자(CEO) 선임·연임 절차를 엄격하게 감시할 수 있도록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원칙)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구 대표의 연임에 재차 제동을 걸었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현황 및 개선방향 세미나'를 열고 구 대표의 연임에 대해 집중 공세를 퍼부었다. 김 의원은 구 대표의 정치자금 쪼개기 후원 논란 등을 거론하며 "부적절한 CEO가 연임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김형석 한국ESG기준원 정책연구본부 연구위원은 "소유분산기업 CEO가 통제 가능한 인적 자원을 활용해 참호를 구축하는 형태의 문제를 초래하고 다소 부적격한 자가 CEO 또는 회장직을 지속해서 연임하는 사례가 관찰된다"면서 "CEO 또는 회장 등 대표 임원의 장기 연임, 예컨대 3연임 이상 안건에 대해서는 주총 특별결의로 강화하는 법 개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과 국민의힘이 이처럼 구 대표의 연임에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데에는 '주인 없는 기업' KT에 여권 성향 대표를 앉히기 위한 밑작업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국가가 연기금을 활용해 민간기업을 공기업처럼 다루려는 문제는 그간 수차례 반복됐지만 이번만큼은 더욱 노골적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KT는 정권 교체 시마다 친 정권 성향의 주인을 맞아왔다.
■ 구현모 체제에서 크게 성장한 KT..9년 만에 시총 10조원 재돌파
국민연금의 직접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KT 내부에서는 구 대표의 연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구 대표는 지난 3년간 KT를 이끌며 거둔 안정적 매출 성과를 일궜다. 9년 만에 시가총액 10조원을 재돌파했고 주가도 크게 오르는 등 기업가치를 한껏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KT의 2023년 연결 매출은 26조4000억원, 영업이익은 1조8000억원으로 전망된다.
5G 가입자 증가, IPTV의 성장 외에도 구 대표는 갈수록 파이가 줄어들고 있는 통신시장의 한계점을 돌파하기 위해 '탈 통신'을 강조했다. 구 대표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를 아우르는 디지털 플랫폼 '디지코(DIGICO)' 선보이며 그간 B2C 영역에 집중돼 있던 사업 영역을 B2B로 국내향 서비스에 머물렀던 서비스 영역을 글로벌로 본격적으로 넓히기 시작했다.
■ 연임 지연에 조직개편·신사업 진행 '스톱'..속 타는 KT
'구현모' 효과를 톡톡히 본 KT 입장에서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일찌감치 조직개편을 마치고 2023년 신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 대표의 연임이 미뤄지면서 조직개편 발표도 늦어지는 등 타 통신사들과의 경쟁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한 KT 관계자는 "KT 내부에서는 구 대표 체제에서의 호실적에 힘입어 연임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실제 KT 노조에서도 구 대표의 연임을 지지했다. 그런데 연임이 미뤄지면서 정작 중요한 신사업 추진이 늦춰지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구현모 대표 연임이 미뤄지는 것에 대해 한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구 대표가 전 정권인 문재인 정부와의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구 대표는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 초기에 이강철 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김대유 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을 KT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특히 이가철 사외이사는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한 모습으로 인해 구 대표는 앞서 윤 대통령이 참석한 경제계 신년회에서 구 대표는 초대받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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