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개정 자본시장법도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이정화 기자 승인 2022.09.02 11:35 의견 0
이정화 산업부 기자

[한국정경신문=이정화 기자]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여성이 주연을 맡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이 속설에 반기를 들 자가 있을까.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무려 2년 동안의 유예기간을 거쳐 본격 시행된 지 한달 가까이 지났지만 여성 이사조차 두지 않는 기업 분위기가 불현듯 떠오른다.

자본시장법은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을 의무화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다. 지난달 5일 시행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주권 상장법인의 이사회 이사 전원을 한 성별로만 구성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일부 대기업은 이 법에 대비해 유예 기간 동안 주주총회를 열고 여성 이사 모시기에 부랴부랴 뛰어들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포스코도 1968년 창사 이후 '첫 여성 사외이사'를 모셨다. 이 밖에도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 대기업은 30여곳에 달했다.

이를 계기로 지금껏 여성 이사를 한 명도 두지 않는 회사가 수없이 많았다는 불편한 진실도 세상에 드러났다.

개중에 몇몇 대기업에서는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의무를 좀처럼 따르지 않는 모습이 포착됐다.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다는 점이 이들의 의지를 꺾어놓은 걸지도 모른다는 의문까지 피어오른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최근 성명을 발표하고 "대기업 중 (자본시장법 개정안)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기업이 아직도 상당하다"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상 기업 18%가량이 여성 이사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아직도 여성 이사를 채택하지 않는 대기업들의 각성을 촉구한다"며 "이사회에 여성 이사들이 참여함으로써 기업의 창의성과 활력이 제고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기업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구호가 무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외 주요 ESG 평가 기준인 한국거래소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와 ▲국제 지속가능성 보고표준 ▲기후변화 재무정보공개 협의체 ▲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 등은 임직원 성별 구성 현황과 양성평등 처우 등을 ESG 경영의 사회 또는 지배구조 분야 평가 지표로 삼는다.

법과 평가 지표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균형 맞는 임원 구성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란 업계 안팎의 외침은 여전히 울림없는 메아리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우선 기업의 (여성이사 영입) 의지가 높지 않고 각 기업 특성에 따른 자격 조건을 갖추지 못한 여성 인력 풀 또한 많지 않아 영입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며 "현실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도 뽑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영입하겠지만 시간이 지나 인력 풀이 어느정도 쌓였을 때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특히 철강이나 조선업계에서는 변호사나 교수직 인물을 모신다 하더라도 해당 분야의 전문 인력이 많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여성 임원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며 "ESG 트렌드이자 지켜야 할 조항인 만큼 대기업들도 속도는 더디지만 어떻게든 개선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실행에 옮길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법 때문에 영입한다." 대기업 몇몇은 이 같은 평가를 부정하기 어렵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현주소다. 외부 사외이사를 제외한 사내이사 기준으로 여성을 한 명 이상 둬야 하는 개정안이 나오면 기업들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 장담한다.

처벌규제 없이도 기꺼이 노력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업종 특성을 탓하며 망설이는 기업도 있다. 따라서 법은 있지만 그들을 막을 순 없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법 없이도 어색하지 않은 사회로 접어들길 기대하는 건 아직 요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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