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분기 국내 3대 철강사에서 잇단 산재사고가 발생했다. [자료=게티이미지뱅크]

[한국정경신문=이정화 기자] 철강사들이 긴장감 속에서 '중대재해처벌법' 3개월차를 맞았다. 수많은 노동 인력을 품고 있는 만큼 중대법 시행 이후에도 산재사고가 반복되자 노동계에서도 '사업자 책임 처벌'을 한층 강화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미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 수뇌부가 줄줄이 심판대에 올라서는 물결에 기업의 주름살은 날로 깊어만 간다.

1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현황에 따르면 지난 1월 27일 중대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인 상시근로자 50인 이상(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는 38건(45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3건 줄었다.

다만 1분기(1~3월) 전체를 놓고 보면 철강 부문이 속한 제조업 사망자 수는 전년 동기(44명) 대비 7명 증가했다. 사망자 비중도 지난해 26.7%에서 올해 32.5%로 늘었다.

이에 대해 권기섭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제조업은 1분기에 사망사고가 크게 늘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유해위험 작업이 많은 조선·철강 제조분야와 화재·폭발·질식 등 대형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석유화학 제조분야 등에 점검·감독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같은 기간 국내 3대 철강사에서는 잇단 안전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월 20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는 용역사 근로자가 작업 중 숨졌다. 이에 지난달 5일 고용노동부 포항지청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포스코 법인과 포항제철소장, 용역사 법인과 대표이사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도 유감을 표명했다.

산재 사고로 수뇌부가 대표적으로 책임을 짊어진 건 현대제철도 마찬가지다. 현대제철에서는 지난 3월 2일 당진제철소에서 근로자가 작업장에서 숨졌고, 같은 달 5일 예산공장에서도 노동자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노동부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안동일 사장을 입건하고 당진공장 고로사업본부의 안전보건총괄책임자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이처럼 노동부가 두 달 가까이 중대재해처벌 위반 여부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지만 참고인 조사와 분석할 자료가 많아 수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다.

동국제강에서도 지난 3월 21일 30대 노동자 고 이동우씨가 작업 중 사망하는 일이 발생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김연극 사장도 직접 고개를 숙이며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한편 인수위에서는 중대 산업재해 발생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종사자의 안전과 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을 처벌하도록 규정하는 중대법 의무 기준이 기업에 부담이 되고 불확실하다는 경영계의 입장을 받아들여 시행령을 개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수뇌부가 줄줄이 심판대로 향하는 것이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은 아니라는 것이 기업의 입장이다.

한 철강사 관계자는 "중대법 자체가 책임 적용 기준이 모호하고 예방보단 처벌에 중점을 두다보니 일부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개정을 동의한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5인 이상 기업 93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 기업의 68.7%는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대응이 어렵다'고 답했다. 기업 10곳 중 7곳 가량이 중대법 대응에 난항을 겪고 있는 셈이다. 또 10곳 중 8곳은 법 시행으로 경영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들 기업은 중대법에서 보완이 시급한 규정으로 '고의·중과실 없는 중대재해에 대한 면책 규정 신설'(71.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유일호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법이 불명확해 기업이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실질적인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명확한 의무내용을 제시하고 이를 이행한 경영책임자를 면책하는 등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철강사 관계자는 "중대법은 근로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경영진을 처벌하는 것이 목적인데 이 같은 취지와 경영진이 그만큼 안전 장치를 촘촘히 세울 것이라는 의도에 공감한다"면서도 "처벌을 통해 근로자 생명을 담보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 수 있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고 과연 노동자 생명 보호를 위한 근원적인 대책인 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