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정부의 세제개편안 여파로 급락했던 은행주가 다시 ‘과징금 폭탄’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한동안 잠잠했던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와 주택담보대출(LTV) 담합 의혹에 대한 제재 절차가 본격화되면서 투자 심리를 짓누르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주 KB금융, 신한, 하나, 우리 등 주요 은행주는 평균 5.6% 상승했다. 코스피 상승률(2.9%)을 2배 가까이 웃돌았다.
앞서 정부가 법인세율 인상과 교육세 인상을 골자로 한 ‘2025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하자 은행주는 직격탄을 맞고 급락했다. 당장 내년부터 1조원이 넘는 세금 부담이 추가될 것이란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 낙폭이 과도했다는 인식과 함께 분기배당 기준일이 몰리며 배당 투자 수요가 유입됐고, 정부와 여당이 세제개편안 재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투자심리가 빠르게 회복됐다.
실제로 지난 한 주간 외국인과 기관은 은행주를 각각 440억원, 570억원 순매수했다. 다만 기관의 순매수는 은행들의 자사주 매입분(약 760억원)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순매도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KB금융(7.1%), 우리금융(6.8%), 신한지주(6.3%) 등 밸류업 모멘텀이 큰 대형 금융지주사 위주로 상승 폭이 컸다.
안정을 찾아가던 은행주에 다시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홍콩 ELS와 LTV 관련 과징금 이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제14차 정례회의에서 홍콩 ELS 불완전판매 관련 과징금 부과 기준을 ‘수수료 수입’이 아닌 ‘투자원금(판매액)’으로 결론 내렸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이론상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 4개 은행에 부과될 수 있는 과징금 규모는 투자 원금의 50%인 최대 8조억원에 달한다. 특히 판매액이 약 8조원으로 가장 많았던 국민은행은 과징금 규모가 최대 4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시장에서는 실제 부과액이 우려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들이 대규모 선제적 자율배상을 실시한 만큼,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라 적극적인 피해 구제 노력을 인정받아 과징금이 대폭 감경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 중인 LTV 담합 관련 과징금도 10월경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과징금 규모가 1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4대 은행은 관련 의혹에 대한 의견서를 지난 8월 초 공정위에 제출하며 담합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투자자들이 과징금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단순히 수천억, 수조원의 비용 발생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과징금 부과가 은행의 핵심 자본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과징금이 부과되면 이는 은행의 ‘운영리스크’로 분류돼 높은 위험가중치(RWA)가 적용된다. 1조원의 과징금은 약 6조원의 위험가중자산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CET1 비율은 보통주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눠 산출하는데, 과징금 납부로 분자(자본)는 줄고 위험가중자산 증가로 분모(RWA)는 늘어나는 이중고를 겪게 되는 셈이다.
은행권은 통상 CET1 비율 13%를 주주환원 정책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만약 CET1 비율이 이 기준 아래로 떨어지면 자사주 매입·소각이나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 정책의 여력이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은행주 투자의 가장 큰 매력인 주주환원 정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관련 기사들이 오랜 기간 노출돼 왔던 만큼 상기 이슈들에 투자자들이 다소 둔감해져 있다”면서 “만약 실제 제재가 이루어지고 이슈화될 경우 투자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은행이 자금중개 기능을 원활히 수행해주길 바라면서도 과도한 과징금을 부과하면 은행으로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시장 예측을 뛰어넘는 수준의 제재가 현실화될 경우 개별 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넘어 국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