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은행권에 ‘주 4.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시동이 걸렸다. 금융노조가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금요일 1시간 단축 근무’라는 실리를 챙기면서 내년도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당장의 전면 도입 대신 단축 근무를 ‘맛보기’로 선보이며 제도 연착륙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는 전날 제7차 지부대표자회의를 열어 ‘2025년 산별중앙교섭 잠정 합의안’을 추인했다. 이번 합의안에는 ▲임금 3.1% 인상 ▲금요일 1시간 조기퇴근 시행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노사 공동 태스크포스(TF) 구성 등이 포함됐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9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 인근에서 열린 총파업 대회에서 주 4.5일제 도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이번 금요일 1시간 단축 근무 도입은 내년 주 4.5일제 도입의 중요한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단편적인 근로조건 개선을 넘어 본격적인 근로시간 단축 제도화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노조의 의도가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정부가 연내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입법 추진을 계획하고 있는 점도 노조의 이러한 움직임에 힘을 싣는다. 과거 주 5일 근무제 도입 당시에도 은행권이 근로기준법 개정 이전인 2002년 7월에 선도적으로 제도를 도입했던 선례가 있다. 이번에도 은행권이 ‘노동시간 단축’ 실험의 선봉에 설 가능성이 크다.
노조 측은 이번 합의에 대해 “노사가 그동안 입장 차이를 보여 왔던 노동시간 단축 의제에 대해 이제는 공동의 목표로 삼고 나아가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라며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당초 노조는 올해 교섭에서 주 4.5일제 도입을 관철시키려 했으나 사용자 측과의 입장 차이로 교섭이 결렬됐었다. 이후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총파업, 노조 위원장의 무기한 철야 단식 농성 등 강경 투쟁을 이어온 끝에 금요일 1시간 단축 근무라는 절충안 합의에 이른 것이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노조가 한발 물러선 모양새지만 실질적으로는 내년 주 4.5일제 본격 도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에 구성될 노사 공동 TF는 올해 주 4.5일제 도입에 필요한 국내외 사례, 데이터 등 논의 대상을 수집·선별한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 산별교섭에서 본격적인 제도 도입을 논의하게 된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주 4.5일제 도입이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 과제이지만 국민적 지지도는 높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시행한 전국지표조사에서 주 4.5일제에 찬성하는 응답자 비율은 32%, 반대 비율은 63%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고액연봉으로 대표되는 은행권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곱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 창구의 영업시간 단축으로 이어질 경우 발생할 고객 불편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번에 합의된 금요일 1시간 단축 근무 도입으로 당장 은행의 영업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 측은 “금요일 1시간 조기퇴근은 현행 영업시간 유지를 전제로 기관별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방향으로 합의된 사항”이라며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세부적인 시행 방안은 추후 산별노사 간 조율을 통해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일부 은행에서는 금요일 영업시간을 1시간 단축하는 방안도 논의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향후 세부적인 협의를 거쳐 근무 시간 단축이 시행될 것”이라면서도 “주 4.5일제 도입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