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5대 시중은행장 전원의 임기가 올해 연말 일제히 만료된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모범 관행에 따른 새로운 경영승계 프로세스가 도입됨에 따라 대대적인 인사 태풍이 예고됐다.
일부 행장들은 뛰어난 경영성과에도 불구하고 임기 내 횡령·부당대출 등 각종 금융사고가 불거지면서 연임을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승열 하나은행장, 조병규 우리은행장, 이석용 NH농협은행장 등 5대 시중은행장의 임기가 12월 31일 끝난다.
2022년 1월 임기를 시작해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이재근 국민은행장을 제외하면 모두 첫 임기다. 이승열 하나은행장과 이석용 농협은행장은 지난해 1월 취임해 임기를 꽉 채웠지만 정상혁 신한은행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전임 행장의 잔여임기를 승계 받으면서 조기에 연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당장 금융당국이 마련한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이 최대 변수다. 그간 폐쇄적인 최고경영자(CEO) 승계 절차 관행을 비판해 온 금융당국에서 경영승계의 핵심 원칙 등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다. 최소 임기 만료 3개월 전 경영승계 절차를 조기 개시하고 내·외부 후보군에 대한 평가·검증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간 은행장의 경우 ‘2+1년’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관례였고 경영성과에 따라 2연임, 3연임도 가능했다. 하지만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적용되면서 통상적인 연임 시나리오를 반복하기는 어렵게 됐다.
실제로 최장수 행장인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이 전날 퇴임 의사를 밝혔다. 비교적 당국 입김에서 자유로운 외국계 은행에서 첫 ‘연임 포기’ 사례가 나온 셈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르더라도 경영승계의 내부 절차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라면서도 “당국에서 경영승계 절차의 공정성·투명성을 강조한 만큼 외부에서 봤을 때 얼마나 타당한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올해 실적만 놓고 보면 행장들의 연임을 반론하기는 어렵다. 5대 시중은행의 올 상반기 순이익은 8조2505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9% 증가했다. 더구나 연초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대규모 손실을 반영하고도 올린 수익이다.
은행별로 신한은행의 순이익이 2조53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하나은행 1조7509억원 ▲우리은행 1조6735억원 ▲KB국민은행 1조5059억원 ▲NH농협은행 1조2667억원 순이다. 상반기 경기 악조건 상황임에도 모든 은행이 1조원이 훌쩍 넘는 순이익을 냈다.
하지만 일부 은행장의 경우 내부통제 이슈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이재근 국민은행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 이석용 농협은행장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국민은행은 국내 최대 홍콩 ELS 판매사다. 지난해 6월말 기준 국민은행의 홍콩 ELS 판매잔액은 7조6695억원으로 시중은행 중 규모가 가장 컸다. 다만 은행과 투자자간 분쟁조정안 수용으로 사태가 원만히 수습되고 있다.
이재근 행장과 이석용 행장은 연초부터 영업점 여신업무와 관련한 배임사고로도 구설에 올랐다. 국민은행은 지난 3월과 4월 두 번에 걸쳐 총 488억원 규모의 배임사고 3건을 공시했다. 자체 검사를 통해 적발한 영업점의 부당대출 사고였다.
농협은행에서도 지난 3월과 5월, 3건의 배임사고가 적발된데 이어 최근에는 117억원의 횡령 혐의를 받는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임기 내내 횡령사고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취임 직후 9000만원 규모의 횡령 사건이 발생했고 올 6월 대리급 직원이 약 1년간 35회에 걸쳐 허위 대출을 일으켜 약 177억7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최근에는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고가 불거지면서 또 한 번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에서 보고 지연 등으로 제재를 검토하고 있어서 연임 과정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9월부터 본격적으로 연말 인사와 관련해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실적이 가장 중요하지만 금융사고 관련 여론의 향방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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