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우리은행이 전임 지주 회장이 연루된 부당대출을 인지한 지 수개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금융사고 공시를 냈다. 금융감독원은 우리금융 지주와 은행 경영진들이 지난해 하반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공시·보고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보고 엄정 조치를 예고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업무상 배임 등 부당대출 취급 관련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지난 23일 공시했다. 우리은행이 부적정 대출 취급을 인지했다고 밝힌 지난 4월로부터 4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공시를 보면 금융사고 발생일은 2021년 5월 6일부터 지난해 6월 30일까지로 사고 금액은 164억5459만원, 손실예상금액은 미정이다. 우리은행은 “부실여신 검사(퇴직검사 등)에 의한 위법행위를 발견했다”며 “관련자 면직처리 및 수사기관에 고소했다”며 금융사고 발견 경위와 사고조치 내용을 알렸다.
앞서 우리은행은 올해 1~3월 전임 지주 회장 친인척 관련 대출을 인지하고도 공시·보고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은 심사 소홀 외 뚜렷한 불법행위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관련 규정에서 여신심사 소홀 등으로 인해 취급여신이 부실화된 경우에는 금융사고로 보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2차 심화검사 및 금감원 현장검사 대응과정에서 ‘사문서 위조 및 배임’ 등 불법 행위를 확인함에 따라 뒤늦게 공시가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적어도 4월 이전에는 우리은행에게 금융사고 보고·공시의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전날 설명자료를 내고 “우리은행은 1월 자체감사를 실시하기 이전인 지난해 4분기 중 이번 금감원 검사에서 확인된 부적정 대출 중 상당수가 이미 부적정하게 취급되고 부실화됐음을 인지했던 것으로 확인된다”고 짚었다.
만약 이 시점에 여신 심사소홀 등 외에 범죄혐의가 있음을 알았다면 지난해 4분기에 이미 금융사고 보고·공시의무가 발생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 금감원의 지적이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의 금융사고 보고·공시의무 미이행이 결과적으로 늑장 대처로 이어진 것으로 봤다.
우리은행이 지난해 9~10월경 여신감리 중 일부 여신이 전직 지주회장 친인척과 관련됐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나 감독당국 보고, 자체감사 등 즉각적인 대처를 하지 않고 있다가 해당 본부장이 퇴직한 이후인 올 1월이 돼서야 자체감사에 착수했다.
3월 감사종료 및 4월 면직 등 자체징계 후에도 감사결과 등 내용을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았고 5월경 금감원이 제보 등에 따른 사실관계 확인 요청을 하고 나서야 감사결과를 알렸다.
우리은행은 자체 감사과정에서 영업본부장과 차주의 위법행위를 알고서도 금감원 검사 결과 보도자료가 배포된 지난 9일 직후 부랴부랴 수사기관에 관련자를 고소했다.
금감원은 이 과정에서 현 경영진의 책임도 분명히 언급했다. 지난해 9~10월 우리은행 여신감리부서가 전직회장 친인척 대출 사실을 보고하면서 현 은행 경영진이 이를 알게 됐고 늦어도 올해 3월에는 지주 경영진도 이 같은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금감원은 우리은행의 이 같은 행보가 은행권의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추진 과정에서 벌어졌다는 데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사외이사 간담회 정례화, 지배구조 모범관행 발표 등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있어 경영진 견제 등 이사회 기능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금감원은 “우리금융·은행은 이번 전직 지주회장 친인척에 대한 대규모 부적정 대출 취급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사회에 제대로 보고한 사실이 없다”며 “그간 금감원과 은행권이 공동으로 추진해 온 지배구조 개선 취지와 노력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날 이복현 금감원장도 KBS ‘일요진단 라이브’ 방송에 출연해 “제왕적 지주 회장 제도가 가지는 문제점이나 이를 바뀌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 개선 방안과 책무구조도 등 다양한 제도들이 논의되는 와중이었는데 이런 일이 불거졌다면 너무도 당연히 엄정하게 조치했어야 했다”며 “이미 새로운 지주 회장·은행장 체제로 1년 넘게 지속된 와중에 이런 것들을 수습하는 방식이 과거와 같은 구태가 반복되고 있지 않나 강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전과 같이 신뢰를 갖기보다는 뭔가를 숨길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진상규명해야 하는 인식이 있다”면서 “대상이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제때 보고가 안 된 것들은 명확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부당대출 인지 시점과 관련해서 추가로 드릴 말씀이 없다”며 “조사에 충실히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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