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이정화 기자]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에 울고 정유업에 웃고 있다. 자회사 SK온이 전기차 시장 침체로 적자늪에 빠져 재정 부담을 안겼지만 정제마진과 유가 상승으로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생존력 유지를 위한 체질 개선이 관건으로 떠오른다.
1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올 1분기 영업익 4311억원을 올려 전분기 영업손실 1675억원과 비교해 흑자전환할 것으로 추정된다.
SK이노베이션을 흑자로 이끈 건 정유 업황 개선이다.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은 1분기 평균 12.5달러로 전분기(4.1달러)보다 3배 이상 뛰었다. 업계에선 정제마진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고유가 기조도 한몫 했다. 국제유가는 중동 정세 악화로 원유 공급에 대한 시장 불안이 이어지면서 최근 5개월여 만에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문제는 배터리 사업이 전기차 업황 둔화로 정체기에 빠졌단 점이다. 삼성증권은 SK온이 1분기 3765억원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예상한다. 전년 동기(3447억원)보다 318억원 늘어난 규모다.
SK온은 지난 2021년 SK이노베이션에서 물적분할한 뒤 매년 조단위 투자를 해왔지만 좀처럼 이익을 못 내고 있다.
모회사의 재무 구조 악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SK온 지원에 자금을 쏟은 SK이노베이션의 총부채는 작년 말 기준 50조8155억원으로 역대 최고치에 달했다. 전년보다 15.6% 확대된 규모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BB+로 내려잡았다. SK온에 대한 대규모 투자 부담이 강등 사유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올해 9조원의 설비 투자 비용 중 7조5000억원을 배터리 사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S&P는 “SK이노베이션 차입 부담이 예상보다 더 크고 오래 지속될 것”이라며 “전기차 배터리 수요 둔화와 설비 투자 급증으로 SK이노베이션의 상각 전 영업이익 대비 조정 차입금 비율이 내년 말까지 4배 이하로 개선되긴 힘들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 박상규 사장, 내실 다지기 강조..친환경·고부가사업 방점
업계에선 당분간 정유 업황 호조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적자를 일부 상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중동 리스크가 길어지면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수요 부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내실 다지기가 필요한 시기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도 올초 신년사를 통해 전면적 체질개선과 포트폴리오 내실 다지기를 강조했다.
박 사장은 “올해 경영환경은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역량을 결집해 생존력을 확보하고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구체적인 청사진은 제시하지 않았지만 친환경·고부가가치 사업을 중심으로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유업계 필수 신사업으로 꼽히는 SAF(지속가능항공유) 시장 공략이 대표적이다. SAF는 기존 화석연료 항공유 대비 탄소 배출을 80~90% 줄일 수 있는 항공유다. 시장 규모는 지난해 44억달러에서 오는 2027년 215억달러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말 SAF 생산 테스트를 진행한다. 2026년 상업 생산이 목표다. 나아가 SAF의 재료가 되는 폐식용유 등 원료 확보를 위해 국내를 넘어 중국과 미국 등 업체에 지분 투자를 하고 있다.
화학분야에선 울산 콤플렉스 내 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다. 총 1조8000억원을 들여 열분해, PET(페트) 해중합, 고순도 PP(폴리프로필렌) 추출 설비 등 폐플라스틱 재활용 종합단지를 내년 말까지 구축한다.
정경희 키움증권 연구원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배터리 부문의 수익성 개선이 필요하다”며 “당분간 가동률 상승, 수율 향상 등 선결 과제가 있고 설비투자 부담으로 경쟁사 대비 주주환원율이 낮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삼성증권 조현렬 연구원은 “SK온의 상반기 실적 부진은 불가피하다”며 “하반기 이후 회복하려면 현재 부진한 고객사 외 신규 고객사 발굴을 통해 기존 생산능력 가동 극대화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배터리뿐 아니라 정유, 화학 등 산업 전반의 대내외적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임직원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본원적 경쟁력과 수익성을 제고하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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