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케케묵은 전통주사업법..전통주, 자랑스러운 ‘국가대표’로 거듭나려면

김제영 기자 승인 2022.06.10 11:53 의견 0
생활경제부 김제영 기자

[한국정경신문=김제영 기자] 깊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대표 전통주를 꼽자면 대게 막걸리가 떠오른다. 반면 가장 대중적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술은 소주다. 한류 열풍에 따라 K-식음료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높아지는데 이 ‘세계화’ 분위기 속 막걸리는 다소 소외된 모습이다.

막걸리도 한때 국민주였던 시절이 있다. 1960년대 막걸리는 전체 주류 소비량의 80%를 차지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막걸리는 쌀·보리 등 곡물을 원료로 집집마다 빚어 마셨을 만큼 예로부터 친숙한 서민의 술이다. 막걸리의 몰락이 시작된 시점은 1965년 쌀로 술 빚기를 금지하는 양곡법이 시행된 이후다. 밀가루로 빚는 등 품질이 떨어지면서 인기도 추락했다.

왕년의 인기는 아니지만 막걸리의 전통성은 견고하다. 지난해 6월 문화재청은 ‘막걸리 빚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이는 국민의 직접 제안을 통해 문화재가 된 첫 사례다. 전통주로서 막걸리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가치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시중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보통의 전통주, 예컨대 서울 장수막걸리도 국순당 백세주도 광주요 화요도 법적으로는 전통주가 아니다.

전통주 등의 산업 진흥에 관한 법과 주세법에 따르면 전통주는 장인(무형문화재)·명인이 제조한 민속주거나 농어업경영체 및 생산자단체가 제조장 소재지 관할·인접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주 원료로 제조한 지역특산주 등이다. 앞서 언급된 장수막걸리·백세주·화요가 법적 전통주가 아닌 이유는 수입산 원재료가 일부 섞이거나 생산 주체 및 생산지가 해당 요건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전통주는 탁주(막걸리)·청주·증류주 등이 꼽힌다. 그런데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주로 알고 있던 시중 막걸리나 청주, 증류주들이 오히려 법적 기준에서 전통주가 아니라고 하니 소비자 입장에서 혼란만 가중되고 전통주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다.

법적 기준에 허점이 있다 보니 와인이 전통주가 되는 우스운 일도 생긴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서 내·외빈에 소개된 만찬주로 6종의 전통주가 채택됐는데 그중 5종이 국산 와인이다. 지역특산주 기준으로 보면 해당 와인들은 모두 법적 전통주지만 주종의 특성을 고려하면 와인이 과연 전통주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또 지역특산주 요건에 따라 외국인이 만든 술이 전통주가 되기도 한다. 미국인이 만든 전통주로 인기를 끈 ‘토끼소주’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탄생해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충북 충주에서 농업법인을 설립한 후 충주 지역 원재료로 생산해 전통주로 인정받았다.

전통주 기준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때는 2017년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가 허용된 이후부터다. 온라인 구매가 가능한 술은 전통주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반대로 온라인 상 구매창이 보이지 않는 술은 전통주가 아니라는 오해가 자라났다.

실제로 한 전통주 제조사 관계자는 “한 달에도 몇 번씩 막걸리나 청주가 전통주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 전화를 받는다”고 말했다.

양곡법 이후 등장한 희석식 소주는 현재 국가대표 술로서 국내 및 해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전통주인 막걸리·증류주·청주 등은 국내에서조차 성장이 더디다. 전통주가 국내에서, 나아가 세계로 뻗어가려면 일단 내부적인 개념 재정립이 시급한 시점이다.

우리 고유문화를 보호·계승하고 알리기 위해서는 우리 것의 정체성부터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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