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옛 술’ 속 조상의 지혜 찾아서..국순당, 사라진 우리 술을 재현하다

국순당, ‘전통주 복원사업’ 연구..현재 25가지 복원
옛 문헌 속 저마다 의미와 특징 담은 아름다운 전통주 이름
사전적·법적 전통주의 정의, 전통주라 부르지 못 하는 사정

김제영 기자 승인 2022.05.24 18:56 의견 0
지난 20일 박선영 국순당 생산본부장은 “전통주 복원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재현성"이라며 "균일한 술 맛이 꾸준히 나와야 상품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박 본부장이 국순당 막걸리를 들고 소개하는 모습. [사진=김제영 기자]

[한국정경신문=김제영 기자] “술을 마실 때 안주를 안 먹는 버릇이 있어요. 맛을 보는데 방해가 되거든요. 술을 하도 맛 보다보니 이제는 알코올 도수까지 맞출 수 있습니다.”

지난 20일 강원도 횡성 양조장에서 만난 박선영(48) 국순당 생산본부장은 우리나라 전통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는 2002년 국순당 연구소에 입사해 주류개발팀장 역임 후 현재 국순당 양조장에서 생산본부장을 지내고 있다. 20년 세월을 막걸리 연구 및 생산에 바친 셈이다.

국순당은 옛 문헌에 적힌 사라진 우리 술 복원 작업에 나서고 있다. 백세주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외국에 소개할 한국 대표 전통주를 만들자는 취지로 탄생했다. 백세주의 성공적인 재현을 토대로 국순당은 2008년 ‘우리 술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복원 과정에서 체득한 조상들의 발효 노하우와 제법은 국순당의 전통주 개발에 밑바탕이 되고 있다.

박 생산본부장은 “복원사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제품으로 출시돼 소비자에 선보이거나 복원과정에서 얻은 제법으로 기존 제품을 개선 혹은 신제품 개발에 적용하는 식이다. 요즘은 전자보다 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면 국순당 생막걸리의 경우 복원 과정에서 유산균을 더한 발효 노하우와 기법을 사용했다. 문헌에 소개된 제법 중 쌀을 3일간 침지하는 행위의 의미를 찾다보니 효모가 알코올을 내는 게 중요하지만 유산균도 관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국순당은 현재 25가지 전통주를 복원했다. 이중 제품 출시된 술은 떠먹는 제형의 이화주, 달여 만든 자주 등 5가지다. 문헌에 담긴 전통주 제법은 약 600여가지, 지금까지 국순당 연구소에서 살펴본 제법만 300여가지다. 난이도에 따라 다르지만 제법 복원에는 1~3년 정도가 소요된다. 복원된 25가지 제법 중 시음·시판을 거쳐 반응이 좋은 제품 위주로 상품화하고 있다.

박 생산본부장은 “전통주 복원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재현성이다. 균일한 술 맛이 꾸준히 나와야 상품화할 수 있는데 원료·환경 등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며 “생산 용의성 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떡으로 빚는 술은 어떤 크기의 용기에서 빚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대량화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통주 문헌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문헌에 담긴 전통주는 저마다 의미와 특징을 나타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사시통음주는 ‘사시사철 통하며 즐길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 청감주는 맑을 청(淸), 달 감(甘)을 쓴 이름으로 청주를 넣은 단 맛이 특징이다. 이처럼 이름이 매력적이고 의미가 담긴 술부터 우선 복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국순당이 생산한 술은 사전적 의미로는 전통주가 맞지만 법적 전통주는 아니다. 법적 전통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준 요건 중 하나 이상 충족해야 한다. 장인(무형문화재)·명인이 제조하거나 농민 또는 농민이 설립한 법인이 제조장 소재지 관할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주 원료로 생산한 술 등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막걸리는 전통주지만 법적 의미에서 막걸리는 제조업체마다 전통주로 인정받는 범위가 달라 혼선을 빚고 있다. 국순당 술의 경우 주세법상 ‘전통주 등’에 속한다. 전통주 기준에 대한 혼란은 2017년 7월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잘못된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 온라인 판매 가능 여부에 따라 전통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막걸리 빚기’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전통주 개념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우선 용어를 사용하는 데에서 오는 혼란이다. 막걸리 빚기가 국가 무형문화재가 된 만큼 막걸리를 ‘전통주’라고 표현하지만 법적 전통주 정의는 다르기 때문이다. 국순당 역시 전통주의 개념을 헷갈려하는 소비자 문의를 꾸준히 받고 있다. 소비자가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사전적 정의를 맞춰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박 생산본부장은 “국순당의 술은 전통주지만 전통주라고 말하지 못한다. 백세주 역시 사전적 의미에서 전통주지만 법적으로는 ‘전통주 등’이다. 용어를 ‘우리술’ 등 다른 방향으로 표기하고 있다”며 “현재 법적 전통주는 민속주와 지역특산주로 이들은 과세나 온라인 판매 혜택을 받고 있다. 기존 막걸리 업체가 바라는 건 혜택이 아니라 전통주 정의 재정립이다”라고 답했다.

업계는 전통주에 관한 혜택이 아닌 ‘개념 정리’를 바라고 있다. 소비자의 일반 상식에 맞춰 전통주의 사전적 정의를 명확히 하자는 주장이다. 대신 현행 법적 전통주는 민속주·지역특산주로 재정의해 기존의 법적 혜택을 적용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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