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역할 못하는 금감원 분쟁조정..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피해자들만 분통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분조위, 결론 못내고 미뤄져..이례적
분쟁조정 신청 2년여 만인데..피해자들 “금감원 왜 있나”
전액 반환이냐 최대 80% 배상이냐..분조위원들 의견 팽팽
피해자들 “비공개 밀실 분조위 개선돼야”..공정성 문제제기

윤성균 기자 승인 2022.05.23 12:07 의견 0
지난 19일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피해자연대와 시민단체 등이 금융감독원 앞에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결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윤성균 기자]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금융감독원이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분쟁조정 신청 2년여 만에 열린 분조위에서 이례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자 투자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0일 분조위에서 하나은행에서 판매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관련 조정안을 상정해 심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추후 속개하기로 했다. 투자원금 보상 규모 등을 놓고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분쟁조정위원회가 1차 회의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연장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지난해 7월 진행된 대신증권에서 판매한 라임펀드의 분조위도 2차에 걸쳐 진행됐지만 나머지 펀드에 대해서는 모두 한번의 회의로 배상 결론이 내려졌다.

불완전판매와 내부통제기준 마련 위반 등 법률 문제를 다루는 제재심의위원회의 경우 심의해야 할 펀드 사례가 많고 쟁점 사안에 대한 제재대상과 당국의 대립이 첨예할 경우 2~3차례 회의를 통해 결론 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분조위의 경우 현장조사와 당사자 면담 등의 사전 절차를 충분히 거치는 데다가 강제성이 없는 중재안을 내놓는 것이기 때문에 논의가 길어질 이유가 많지 않다. 법적 절차보다 빠르게 결론이 난다는 점은 금융소비자들이 금융사와의 분쟁에서 민사소송보다 분쟁조정 절차가 선호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의 경우 2020년 환매가 중단돼 같은해 분쟁조정 신청이 이뤄졌다. 당초 금융당국은 ▲라임펀드 ▲옵티머스펀드 ▲디스커버리펀드 ▲독일헤리티지펀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등 5대 환매중단 사모펀드에 대해 지난해 2분기까지 제재 및 분쟁조정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했지만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와 독일헤리티지펀드 분조위 일정이 지금까지 미뤄졌다.

금감원은 지난달 25일 분조위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분조위 위원들과 사전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자료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일정을 두 차례 더 연기하기도 했다.

분쟁조정 신청 후 2년여 만에 열린 분조위가 결론을 내지 못하자 투자피해자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분쟁조정 절차가 이렇게 지연될꺼면 처음부터 민사소송에 나서는 게 더 낫겠다는 반응이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피해자연대 관계자는 “오랫동안 결론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금감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한게 잘못이다”라면서 “민사 재판에 버금가게 길어지고 원칙도 없고 배상 비율도 너무 낮고 금감원의 존재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의 분쟁조정 논의가 길어지는 것은 분조위원간 배상비율을 놓고 이견이 갈리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는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역정부에 청구할 진료비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다. 특히 안전자산인 인버짓(예산 내 채권)에 투자된다는 투자설명과는 달리 실제로는 회수가 불투명하거나 소송을 거쳐야 하는 엑스트라 버짓(예산 외 채권)에 투자됐다.

판매사가 고객들에게 중요한 사항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착오를 일으켰다고 보고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금감원은 이와 유사한 이유로 라임무역펀드와 옵티머스펀드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결정한 바 있다.

반면 금융투자상품은 기본적으로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적용되는 만큼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 등을 가감 조정해 최종 배상비율이 결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히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제시된 사기판매 증거를 놓고도 한 번에 취소 결정을 못 내렸다는 것은 금융사 봐주기 결론을 내리려는 것 아니냐 우려된다”며 “기존의 40~80% 수준의 배상비율을 결정하는 것은 피해자 입장에서 차라리 분쟁조정을 신청하지 안 하느니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금감원이 40~80% 수준의 배상안을 내놓을 경우 분쟁조정을 거부하고 민사소송에 나서기로 했다. 또 분조위 논의 내용 공개 여부나 분조위원 선정의 공정성 문제 등도 제기할 계획이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피해자연대 관계자는 “투자 원금 100% 반환에 준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끝까지 간다”며 “비공개 밀실처럼 진행되는 분조위가 투명성을 담보하지 않으면 공정성도 담보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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