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자산운용 이미지 (자료=SBS CNBC)
[한국정경신문=조승예 기자] '라임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이 펀드 설계자와 각종 비리 연루자 등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긴 데 이어 펀드 판매창구인 은행·증권사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최근 한국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 KB증권 등 라임 펀드 판매사들을 연이어 압수수색해 펀드 판매·운용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판매사들이 라임 펀드에 관한 기본 내용과 투자 위험성 등을 고객에게 제대로 안내하지 않고 상품을 판매하는 등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라임 피해자들은 판매사들로부터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이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펀드에 가입했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판매사는 레버리지를 일으켜 리스크를 높이는 투자 방식인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고도 이를 고객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피해자 진술 등을 바탕으로 펀드 판매 과정에서 판매자들의 의도적인 위험 축소나 은폐가 있었는지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판매사가 자산운용사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펀드'를 만들게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OEM 펀드는 자산운용사가 은행·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의 요청을 받아 만들어 운용하는 상품으로 자본시장법상 금지돼 있다.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은 최근 재판에서 대신증권 측이 펀드 설계와 운용에 관여한 상품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결정적 부실이 발생했던 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그룹(IIG) 펀드에 투자된 라임 펀드가 신한금투의 지시를 받아 만든 OEM 펀드라고도 주장해 왔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역시 '옥중 입장문'에서 "우리은행에서 6개월짜리 초단기 만기 상품을 라임에 제안했고, 이른바 OEM 펀드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OEM 펀드 관련 책임은 자산운용사에만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라임 측이 펀드 운용 과정에서 사기 등 각종 위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난 만큼 OEM 펀드에서도 이런 부정이 발생했다면 판매사도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법조계 시각도 있다.
라임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김정철 변호사는 "이종필이 다단계 금융사기식 펀드 돌려막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기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부실을 알고도 투자자 모집을 통한 자금 지원을 했다면 판매사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라임은 일부 펀드에서 문제가 발생한 후에도 이를 숨기고 펀드 판매를 계속해 피해를 키웠다. 판매사들은 자신들 역시 라임 측으로부터 손실 관련 통지를 받지 못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판매사들이 운용사에 대한 점검 의무를 소홀히 하고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현행법상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신의성실의 원칙'을 어겼다는 지적이다.
피해자 A씨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알 수 있다는 증권사 말을 믿고 투자를 했는데 정작 일이 터지니 자기들은 감독 책임이 없다고 한다"며 "수수료와 판매 보수를 챙기면서 고객 자산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확인도 안 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자세한 상품 설명이 있는 서류에 투자자들이 서명하고 펀드에 가입한 만큼 손해에 대한 책임을 판매사들에 전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복잡한 금융 용어로 채워진 방대한 서류들을 일반 투자자들이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따라서 판매사 직원들의 설명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반박도 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복잡한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투자자와, 더 많은 투자자를 끌어들이려는 판매사가 만나면서 라임 사태 같은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라는 게 문제다"라며 "금융감독 기관이 이를 감시해야 하지만 펀드 상품의 수가 워낙 많아 현실적으로 이 역시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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