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N기자] 전기차 배터리 소송, '글로벌 스탠더드'가 열쇠다

김수은 기자 승인 2020.08.14 18:13 | 최종 수정 2020.08.14 20:23 의견 4

[한국정경신문=김수은 기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소송전'이 NDA(비밀유지협약)를 맺고 합의에 들어가며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도 오는 10월 ITC(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극적 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동안 두 기업 간의 분쟁은 정부의 중재도 통하지 않을 만큼 첨예했다. 지난해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전기차 배터리(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제소하면서 벌어진 두 회사의 치열한 소송은 올해 초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Default Judgment)’ 예비결정이 내려지면서 LG화학이 승기를 잡았다.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전기차 배터리는 포스트반도체 시대의 신성장 동력이다.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배터리 업체들은 오는 2025년 180조원대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주도권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LG화학은 선두주자로 평가받는다.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이들 3사가 모두 세계 5위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두 회사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분쟁을 이어가는 동안 양적으로 앞선 중국과 일본은 기술적 성장을 거듭하며 반사 이익을 누리고 있다.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이자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최강자 폭스바겐이 스웨덴의 배터리업체 스웨덴 노쓰볼트와 손잡고 JV사(JV·Joint Venture)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본 산업통상자원부가 중재에 나섰다. 글로벌 1위로 주도권을 굳건하게 확립하는 기회를 놓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 인사까지 움직여 두 회사의 격렬한 분쟁을 말렸지만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기술 패권'을 선취하기 위한 민간 기업들의 경쟁이 뜨거운 시대에 정부가 중재에 나서는 것은 아이들 싸움에 어른이 나서 말리는 것처럼 부자연스럽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은 당연하다. 글로벌 선두업체는 모두 시장 원리에 따른 기술 경쟁을 통해 현재의 자리에 올랐다.

두 회사의 배터리 소송전에 대해 일각에서는 “소모적인 분쟁으로 국내 배터리산업에 피해를 주고 국익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기업 간 분쟁이 국가 대항전으로 번지면서 일부 전문가와 언론에서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협력과 동맹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완성차업체와의 동맹은 가능할지 몰라도 기술 수준이 다르고 경쟁 구도에 놓인 배터리 업체가 이익을 보장받을 수 없는 '동맹'을 맺기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웠다.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제소한 LG화학의 입장에선 비난과 허상에 가까운 ‘배터리 동맹론’은 어불성설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전기차 배터리 기술은 향후 수십년 동안 기업의 성장 기반이자 온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큰 지식재산권인데 보호받기는커녕 소송전을 멈추고 원만한 해결로 '동맹'이나 맺으라니 난감한 것이다.

배터리 분야는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제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순서를 역으로 추적하고 분석함으로써 제품의 제조 과정과 성능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해 기술 개발로 축적된 노하우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LG화학은 “오랜 기간 막대한 투자로 확보한 영업비밀을 손쉽게 탈취 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미 기술유출 피해를 입은 LG화학의 시각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기술 탈취 행위가 경쟁회사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산업 스파이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다행히 소송 분쟁은 긍정적인 결말을 향해 잦아들고 있다. 굳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합리적 보상을 통한 해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원만한 합의를 위해 객관적인 근거마저 은폐한 SK이노베이션 측에 ‘합리적 배상 방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고위층 인사가 끼어든 ‘퉁치기 협상’이 아닌 LG화학의 주주와 투자자가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진정성 있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두 회사간의 다툼이 향후 중국을 비롯한 해외 경쟁사들의 지식재산권 침해 행위와 '인력 빼가기'라는 악순환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지식재산권에 대한 기준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상향시키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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